제2차 유류파동, 1979년 여름 주유소에 몰려든 석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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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2월 말에 시작된 제2차 오일쇼크는, 1979년에 국내 유류 관련 제품들의 가격을 5번이나 인상시켰다. 제2차 오일쇼크 영향은 6월 중하순부터 심각해지면서, 소비자들이 많이 쓰는 등유(석유)가 제한 판매되자, 7월 중순까지 서울 시내 주유소에는 연일 석유를 사려는 사람들이 붐볐다. 사진에 물통이 아니라 석유통이 줄지어 놓여있다. 순서가 뒤바뀌지 않도록 줄로 석유통을 엮은 것이 이채롭다(사진/1979.7.6.) 석유 한 통을 사기 위해, 땡볕에도 순서를 기다리는 여성들 머리는 퍼머 스타일이 많고, 옷차림은 반팔 상의에 치마를 착용했다. 살림살이가 60년대나 70년대 중반보다 나아진 듯 옷 소재도 좋아 보이고, 일부 여성들 표정이 어둡지만 대체로 여유 있게 보인다. OPEC(세계석유수출기구)는 1978년 12월 회의에서 배럴당 12.70달러인 원유가격을 단계적으로 14.5%의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이란에서 유전 노동자들이 팔레비왕정 타도를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하면서 이란정부는 1979년 3월까지 석유생산을 대폭 감축시키고 수출을 중단했다. 이 결과 배럴당 12.70달러이던 원유 가격이 20달러를 돌파했고, 시장에서는 배럴당 40달러 가까이 올랐다. 2차 오일쇼크로 국내 정유업체들은 공급을 감소시켜, 유류값이 치솟았고 심리적 불안으로 산업체들은 사재기를 하며 국내 가수요가 급증했다. 가정살림에 매우 밀접한 등유(석유)는 평소에 한 주유소에 하루에 2천L씩 공급되었는데, 파동 이후 일주일에 2천L가 공급되니, 주유소에서는 일반소비자들에게 한 사람에 5L정도만 판매했다. 7월 초에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증산 계획을 발표하고, 우리 정부가 적극적 대책 마련에 나서며, 시간의 흐름으로 상황에 적응력이 붙으면서, 사재기 현상은 7월 중하순을 지나며 누그러져, 8월 들어서면서 안정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2차오일 쇼크는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주어 물가 급등,기업 경영 악화, 노사관계 심악등으로 나타나면서 국정 불안이 조성되면서 1979년 10·26과 12·12사태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됐다. 제2차 오일쇼크로 1980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1.5%로 내려앉았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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