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외원조 AID 차관 도입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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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9월13일, 남덕우 부총리(좌)와 마이클 HB 애들러(Michael H.B. Adler, 우측) 주한 유세이드(USAID, 미 국제개발처) 처장이 경제기획원에서 한국에 공여하는 1천2백만 달러의 AID개발 차관협정에 서명하고 있다(사진/ 1975.9.13.) 계약된 AID 차관 중 2백만 달러는 수리사업지원 비용이며, 5백만 달러는 서울대학교 자연대학대학원 기초과학프로그램 개발 지원을 위한 비용이었다. 나머지 5백만 달러는 보건 분만제도 지원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차관 조건은 10년 거치 30년 상황으로, 이자율이 거치기간 중 2%, 상환기간 중 3%였다. 당시 정부는 서울대를 집중적으로 키우던 시기였다. 이듬해인 1976년 2월에도 남덕우는 영국 로스차일드은행과 과 홍콩 AAC로부터 5백만 달러를 더 빌려 서울대 시설 현대화 자금으로 투여했다. AID차관은 미국이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장기융자해 준 금융이었다. AID차관은 개발차관기금(DLF)의 후신으로 미국대외원조법 중에서 경제원조 분야인 국제개발법(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에 근거하여 공여하는차관이었다. AID 창구였던 주한 유세이드(USAID)는 주한 미대사관 건물에 있었다. 한때 유세이드는 미국인 직원 500여명, 한국인 직원 1,000여 명을 거느리는 규모였다. 또 유세이드 처장은 외교사절의 대우를 받고 우리나라 장관급을 상대했다. 우리 경제가 자립 태세를 갖추어 가면서 유세이드는 1976년부터 철수를 시작하여 1980년 9월 완전 철수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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