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서거, 조문 마지막 날 삼청동에 줄 이은 조문객

TwitterCyworld
이전
다음

1979년 11월2일 박정희 서거 조문 마지막 날, 청와대 분향소에 조문하려는 사람들이 삼청동 입구부터 경복궁 담장 옆에 줄지어 있다. 10월27일부터 시작된 조문 기간 내내 사람들은 밀려들었다(사진/ 1979.11.2.) 경찰들이 당시에 착용하던 짙은 군청색 복장을 하고 질서유지를 위해 배치되어 서있다. 조문객들은 1970년대 우리 시민들의 모습이다. 남녀노소, 주부, 학생, 직장인...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진지하다. 사진 우측 여학생들이 단발머리를 하고 흰색 카라가 달린 당시 교복을 입고, 검정 학생 스타킹에 검정 구두를 신고 책가방을 손에 들었다. 현재 학생들이 자연스런 머리와 자율복 차림으로 운동화를 신고 책가방으로 등에 색(sack)을 지고 다니는 모습과 매우 다르다. 여학생들 뒤에 아들과 함께 서 있는 여성은 당시 유행이던 넓은 통바지를 입었다. 박정희 집권도 다른 권력과 마찬가지로 공과가 있지만, 그의 18년간 장기 독재는 사람들에게 ‘우상화 효과’를 유도했고, ‘시민의식’ 확산이 미진한 상황에서, 오랜 군사독재로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 전국에 설치된 175개 분향소에 1,769만 명이 조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노무현 경우 조문객 515만 명, 김대중 70만 명, 김영삼 23만 명으로 발표됐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포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