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학생 임수경 데리고 판문점 통해 귀국한 문규현 신부 첫 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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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당시 40세,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대표)가 1989년 11월7일 서울 형사지법에 첫 공판을 받기 위해 이송되고 있다(사진/ 1989.6.7.) 이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임수경 재판과 병합심리를 요청하면서 재판은 13일로 연기됐다. 문규현은 재판에 앞서 “임씨와 본인, 사제단은 통일을 향한 민족의 하나된 결단이며.. 민족과 종교는 하나이며 임씨 또한 이런 신앙의 정신으로 행동했고 사제단도 그 신앙을 쫓아 임씨와 함께 하기로 한 것이며 천주교 신부도 교회도 국민의 의지도 모두 민족공동체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에 주지시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임수경은 천주교 신자(세례명 수산나)였으나, 2004년 경 불교로 개종하여 공덕주라는 법명을 받았다. 문규현은 1989년 6월6일 북한을 방문하여 남북 동시 통일 염원미사의 일환으로 북한의 유일한 성당인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임수경은 당시 외대 4학년 학생으로, 북한이 주최하는 제13차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제1차 대회는 1947년 2월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참석하려고, 서독을 거쳐 1989년 6월30일 밀입북했다. 신부 문규현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로 ‘교우’인 임수경 학생의 판문점 귀환에 동행하기 위해 7월25일 다시 북한에 들어갔고, 8월15일 임수경을 데리고 판문점을 통과하여 귀환했다. 문규현과 임수경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문규현은 1990년 6월에 징역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 받았고, 1992년 12월 가석방됐다. 이들의 방북에 대해 현재도 평가가 다르지만, 대세적인 평가는 이들이 친북적인 정치적 목적이 없지만 무분별한 통일논의와 허가받지 않은 밀입북 행위가 평화통일에 역행하며, 통일논의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한편 전북 익산에서 1949년에 태어난 문규현 신부는 친형이 문정현 신부이고, 여동생이 문현옥 수녀일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집안 출신으로 1976년 광주 대건신학대학을 졸업후에 세제 수품을 받았다. 1987년 미국 메리놀 신학대학원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신학적 고찰’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칠 정도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깊다. 문규현 신부는 사제로서 또한 사회활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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