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막바지, 쌀시장 개방 저지 거센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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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초 제네바에서 열리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우리나라 쌀시장이 개방될 것이라는 예측이 높아지자 그간 벌여왔던 농민들이 항의가 매우 거세졌다. 서울 중구 충정로에 소재한 농협중앙회 건물에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사진/ 1993.12.4.) 그 즈음 우리나라 농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로 쌀시장 개방 반대시위를 벌였고 제네바로 간 14명의 농민대표단은 12월11일 제네바 가트본부 앞에서 쌀시장 개방 반대 시위를 하며 삭발을 하고 혈서를 쓰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2월9일 쌀 시장 개방에 대해 대국민 사과 담화를 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1986년 9월에 시작되었다. 8차에 걸쳐 협상을 벌여 1993년 12월15일에 실질적인 협상은 타결되었고 1994년 4월15일 완전 종결됐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10년간 관세화 유예, 관세화 유예기간 중에 1~4% 최소시장 접근 허용 방식으로 타결됐다. 1995년부터 초기 5년간은 국내 소비량의 1%부터 시작하여 매년 0.25% 늘리고 1999년에 2%, 2000년부터 5년간 매년 0.5%씩 올려 2004년에 4%까지 허용되었다. 2015년 우리나라 쌀시장 전면개방이 되었다. 2017년 현재 쌀은 연간 40만톤이 수입되고 있고 쌀재고는 2016년 말 170만톤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연장으로, 1980년대 들어 GATT가 종래 규칙으로는 확대된 국제무역 마찰 조정이 어려웠고, 특히 미국이 농업, 제조업, 서비스산업 등에서 적자를 직면하면서 각국과 통상마찰이 잦아지자 새 무역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15개 분야로 무역 교섭을 진행했고 농업, 지적소유권, 서비스, 섬유, 긴급 수입 제한 등 분야에서 각국 간 협상이 어려웠다. 1991년 G7은 모든 수입제한품목의 자유화, 농업보조금 폐지, 이중 곡가제 폐지, 영농자금 융자중단, 수출보조금 철폐를 합의했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1995년 1월에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GATT를 흡수하고 UR협정이행을 감시하게 됐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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