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도 집 전화 놓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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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말이 되자 전화가설 문제가 다시 이슈화 됐다. 요즈음 일반 시내전화를 놓으려면 전화국에 전화가설을 오전에 신청하면 오후에 설치가 되고 6만원 가입비를 내면 되지만 당시는 일반 집 전화를 놓으려면 1,2년 기다리기는 다반사였다. 전화기 형태도 1970년대는 버튼 식이 아니고 거의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이었다(사진/1979.12.7) 시내전화 요금은 통화시간과 관계없이 일정 요금이 나왔고, 시외전화는 시간에 따라 부과 되었다. 체신부가 1979년 초에 1천4백64억원을 투입하여 42만 회선을 증설하기로 했는데(실제 약40만 회선 정도만 처리됨) 이 규모는 당시 그간 적체되었던 42만 건을 처리하면 1979년에 신규 신청자를 해소할 전화는 1대 여유도 없었고, 전년도인 1978년 하반기 신청자 수요도 해결이 안 되었다. 1979년 말까지 적체량은 60만건 이상이 됐다. 1979년 전화 설치대수는 2백36만대로, 1970년에 비해 4.4배가 증가했다. 1970년대에 1백명 당 1.5대였고, 1979년 5.8대였다. 당시는 대부분 기계교환식이어서 증설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1979년 영동전화국과 당산전화국에 ESS형 전자교환기가 설치 ·개통된 이후 1981년부터 전자교환방식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전화설치 적체 문제는 해갈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일제 해방 직후 남한에 전화 5만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1960년대 제1차 통신사업5개년 계획 실시 후 21만대가 보급, 1975년에 100만대 보급됐다. 전화가설이 쉽지 않자, 국가적 기반장치를 근간으로 설치되는 전화를 민간에서 사고파는 거래가 성행하자, 정부는 1970년 7월 매매와 양도가 가능한 백색전화와 매매와 양도가 안 되는 청색전화로 운영했다. 1979년 백색전화 값은 중소도시에서 1백만원을 넘었고, 반포전화국은 180만원, 당산은 175만원, 영동은 160만원, 부산은 210만원까지 호가했다. 당시 쌀 80kg 한가마니 값은 5만원이 조금 넘었다. 1984년부터 초기형태의 이동전화 서비스 시작으로 휴대폰 보급률이 2010년에 100% 넘어서면서 일반 시내 전화 가입자는 계속 줄고 있다: 2012년 1826만1220명. 2013년 1762만453명, 2014년 1693만9308명[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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