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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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3일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그룹 회장의 차남인 정몽구(1938~ )가 서울 계동 본사에서 현대그룹 회장 취임식을 갖고 취임사를 하고 있다(사진/1996.1.4.) 정몽구는 취임사를 통해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을 위해, 사외이사제를 도입한다며 가치경영의 취지를 밝혔다. 당시 정부는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사외이사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재벌들이 반발하여 유보된 상태였다. 이전까지 그룹 회장직은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이 1987년 1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맡고 있었다. 사진 단상 앞줄 흰 테이블 좌측에 그간 그룹을 이끌던 전 회장 정세영이 눈을 감고 있고, 우측에 정주영 회장의 5남인 정몽헌(1948~2003) 당시 현대그룹 부회장이 앉아 있다. 이 취임식은 현대그룹 왕좌 쟁취 투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었다. 이후, 1998년 1월, 5남 정몽헌이 현대그룹 공동회장이 됐다. 두 사람은 그룹 주도권 장악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99년 12월31일 정몽헌 회장의 측근인 박세용 회장(사진 정세영 회장 바로 뒤편 좌측 안경 착용)이 현대자동차로 발령이 났다. 이를 두고 차남 정몽구는. 동생 정몽헌이 측근을 현대자동차로 보내서 현대자동차를 장악하려 하다는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이후 3개월도 안된 이듬해 2000년 3월 정몽헌 회장이 해외출장을 간 사이에, 정몽구 회장은 보복조치로, 정몽헌 회장의 측근인 이익치(사진 정몽헌 회장 바로 뒷줄 좌측)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를 시켰다. 정몽헌은 이익치 전보 발령을 무효로 했고, 정몽구는 그룹공동회장직이 박탈됐다. ‘왕자의 난’이 세상 밖으로 분출된 것이다. 정몽헌이 현대그룹 단독회장이 되었지만 두 형제가 그룹 승계를 두고 싸우는 동안,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명예회장 정주영은 자신을 포함, 차남 정몽구와 오남 정몽헌 모두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고 2000년 5월에 발표했다. 정주영은 현대그룹 승계 싸움을 정리하려고 2000년 9월 현대자동차 및 관계사를 계열에서 분리하여 정몽구에게 넘어주어 현대자동차그룹이 형성됐다. 이듬해 2001년 3월 정주영 회장이 타계했다. 2002년 9월 5억달러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정몽헌은 검찰조사를 받게 되고, 2003년 8월 계동사옥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부인 현정은이 2003년 9월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으나 경영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러 계열사가 매각되고, 현대상선을 분리하면서, 2016년 현대그룹은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었다. 현재 현대그룹의 대주주는 현대엘리베이터이고, 현대그룹에 남아있는 것은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아산, 현대유엔아이,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파트너, 현대글로벌, 현대무벡스, 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 블룸비스타(현대종합연수원)이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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