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통신혁명 가져온, 국내 최초 광섬유 통신 개발자 최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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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최상삼 KIST 박사가 내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 1980.01.09.) 최상삼(당시 40세)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1974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에 입사했다. 최상삼은 김기순 등의 연구팀을 이끌고 국내 최초로 1978년 광섬유 제조에 성공했다. 1979년 12월 말, 한국전력 부산지점과 각 변전소를 연결하는 고압선에 광통신을 부착하여 실용화를 수행하고 광화문 전화국과 중앙전화국 사이도 광섬유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전기통신에서 다량의 정보 전송할 때 높은 주파수의 전자파를 이용하는데, 빛도 높은 주파수라서 광섬유를 만들어 전기통신에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 구리 전화선을 사용할 때는 저항이 커서, 고압전류 옆을 통과하기 어려운데, 광통신은 저항을 받지 않아 기존 송전선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광섬유 통신은 대량정보를 동시전달은 물론 혼선도 없으며, 도청이 불가능하다. 금속회선 경우 전화 1만 회선을 연결하려면 회선 케이블이 직경 30cm에 달하지만, 광섬유를 쓰면 머리카락 두 가닥 정도의 유리섬유관이면 됐다. 석영과 모래를 이용해 제작되는 광섬유는 km당 15만원 제작비가 들었다. 기존에 동선인 경우 1km당 115만원이 소요된 것에 비해, 매우 저렴했다. 광섬유는 전송 손실을 줄이고 가격도 저렴하여, 경제적 타당성도 갖추게 됐다. 광섬유를 항공기, 선박 등에 활용하면, 무게를 줄일 수 있어서, 활용 가능성에 기대감이 매우 높았다. 광섬유통신은 20세기 초반에 개발되었지만 전달 과정에서 빛 손실이 너무 커서 장거리용으로는 사용하지 못했다. 1970년 미국 코닝에서 5db/km 저손실 광섬유를 만들었고 영국, 일본 등에서 개발을 계속해서 0.2db/km까지 줄였다. 우리나라는 최상삼 연구팀은 1981년에는 MCVD기법으로 1db/km 손실의 광섬유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당시, 광통신시스템은 미국,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약 80개 시스템이 운영되었는데 실험단계가 많았고, 일본 등 전력회사 11개사가 활용하는 실용화 단계였다. 1982년에 대한전선, 금성전선, KIST가 공동투자하여 한국광통신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광섬유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되었고, 삼성전자와 ITT, 대우와 노턴텔레콤, 금성전선과 AT&T,대한전선과 스미토모 등 제휴사들이 만들어져 광수동소자, 증폭기, 광부품도 개발했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 된 것은 이같은 배경이 있었다. 현재 머리카락의 1/10 정도의 굵기(지름 0.02~0.05mm)의 섬유 한가닥으로 전화 1만2천 회선의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한편 최상삼은 2016년 3월, 미국광학회(OSA)가 주는 제2회 ‘이상수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상수상은 광학연구의 세계적 대가인 이상수(1925~2010) 한국과학원(KAIST 전신) 초대 원장의 업적을 기려서 2013년 제정했다. 2년에 한번 광학분야에 탁월한 연구성과를 낸 과학자에게 주고 있다. 최상삼은 현재 레이저앤피직 고문이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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