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작곡가 길옥윤 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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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작곡가 길옥윤(당시 55세)이 서울 미도파백화점에서 1982년 1월 16일부터 24일까지 시화전을 열었다. 길옥윤(중앙)의 시화전 개막식에 당시 최대 미인으로 꼽힌 영화배우 정윤희(좌)도 참석했다(사진/ 1982.1.16.) 길옥윤의 연예생활 3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시화전에 빈방, 인생, 님과술과 노래, 딸의 생일 등 53편의 시가 변종하, 박서보, 김원, 원문자, 이동식, 이우환 등 화가의 그림이 곁들여진 시화로 선보였다. 소년시절부터 시를 좋아했다고 하는 그는 자신의 진실과 순수의 열정이 담긴 시라고 자평했다. 길옥윤 본명은 최치정이다. 1927년 2월22일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했다. 평양고보를 나와 1943년에 서울대 치과대 전신인 경성치과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49년에 졸업했다. 그는 음악에 빠져 박춘석, 노명석과 함께 ‘핫팝’이란 그룹을 만들어 1946년 미8군 무대에서 재즈색소폰을 연주했다. 1950년 밀항하여 일본에 건너가서 길옥윤이라는 예명으로 작곡을 하며 연주활동을 했다. 1960년 동경 스윙 오케스트라 악단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고 1963년 가수 현인에게 ‘내사랑아’ 작사와 작곡을 해주었다. 1966년 패티 김에게 ‘4월이 가면’곡을 주어 이 노래가 큰 반향을 받으면서, 패티 김과 결혼했다. 이어 ‘사랑하는 마리아’ ‘이별’과 ‘서울의 찬가’가 연속 히트를 하면서 길옥윤의 명성은 최대치에 달했다. 길옥윤은 7년 뒤에 패키 김과 이혼했다. 길옥윤은 1976년 신인가수 혜은이를 발굴하여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히트시켰고, ‘감수광’ ‘제3한강교’ 등 히트곡을 냈다. 1978년 제1회 뉴질랜드, 태평양가요제에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했다. 1980년 길옥윤은 28살 아래의 전연란과 재혼하고. 1988년 올림픽 폐막식곡을 작곡했다. 길옥윤은 음악카페를 운영하다가 빚을 지고 일본으로 갔다. 폐암선고를 받고 1994년 한국에 귀국했지만 폐암과 척주암이 악화돼어 1995년 3월17일 68세로 사망했다. 3,500 여곡의 대중음악을 작곡한 길옥윤은 서양음악이 국내에 물밀 듯이 들어올 때 이를 수용하면서 한국적 색채를 띤 대중가요로 재구성한 음악가로서 그의 업적을 평가받는다. 주요 작품으로 ‘사랑하는 마리아’ ‘서울의 찬가’ ‘이별’ 등이 꼽힌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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