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탄 박종화 작고,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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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월17일 월탄 박종화 장례식이 평창동 자택에서 열렸다. 박종화 영정이 장지를 향해 승용차로 옮겨지고 있다(사진/ 1981.1.17.) 박종화는 숙환으로 1월13일 하오 7시 45분 평창동 자택에서 80세로 별세했다. 장지는 경기도 장흥 선영으로 1970년에 세상을 떠난 부인 김창남이 묻힌 곳이었다. 유족으로 아들 돈수, 자부 현화수(소설가 빙허 현진건 여식)와 손자녀가 1남5녀를 두었다. 박종화는 사망 두어 달 전인 1980년 11월25일 예술원주최 심포지엄에 참석한 후 병세 악화되었다고 한다. 박종화는 1901년 서울 출생으로 우리나라 한국 근대문학의 여명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1920년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문학동인지 ‘문우’를 발간했다. 1921년 5월 시 전문지 ‘장미촌’에 ‘오뇌의 청춘’ ‘우유빛 거리’를 발표했다. ‘장미촌’은 평화와 이상향을 뜻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현진건, 나빈, 노자영, 이상화, 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운동을 하면서 1922년 1월에는 ‘백조’ 발간에 참여하고 ‘밀실로 돌아가라’를 발표했다. 이외 몇 편의 소설을 내놓고, 박종화는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일제 말기의 각종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우리 역사에 근거한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1938년 매일신보에 ‘금삼의 피’를 발표하고 이어 ‘대춘부(1938)’ ‘다정불심(1938)’ 등 역사소설은, 이전까지 야담 혹 전기류 유형 소설들이 대부분이었던 역사소설에 일대 혁신을 시도했다고 평가된다. 해방 후에는 ‘임진왜란(1957, 조선일보)’ ‘여인천하(1959)’ ‘자고 가는 저 구름아(1962, 조선일보)’ ‘제왕삼대(1962, 부산일보)’ ‘월탄 삼국지(1968, 한국일보)’ ‘양녕대군(1966,부산일보)’ ‘세종대왕(1969)’등을 발표했다. 박종화 소설은 영화 TV드라마에 많이 활용됐다. ‘금삼의 피는 신상옥 감독 작품 ’연산군‘(1961)으로, ’다정불심‘은 ’다정불심‘(1967)으로 영화화 됐다. 또한 TV 드라마로 ’세종대왕은 KBS ‘용의 눈물(1996~1998)’, ‘여인천하’는 SBS ‘여인천하(2001~2002)’로, ‘다정불심’은 MBC ‘신돈(2005~2006)’, ‘자고 가는 저 구름아’는 SBS의 ‘왕의 여자(2003~2004)’로 각각 방영됐다. 박종화는 동대교수, 성대교수, 연대교수, 서울신문사장, 예술원장, 문인협회 이사장, 예술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편 박종화가 당시 50년간 살던 서울 충신동 40간 한옥은 도시계획으로 헐려 1975년 서교동으로 이사했지만, 충신동 집 서재 ‘조수로’를 최대한 그대로 살려 1975년에 평창동으로 옮겼다. 평창동 집은 평창동 128-1번지에 소재하며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어 건축적·문학사적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평가받아 2004년 9월4일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됐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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