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게이트’ 중심 인물 박동선, 미 하원 최종 신문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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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3월 9일, '코리아게이트'의 중심 인물인 재미교포 실업가 박동선이 미 하원이 실시하는 마지막 신문에서 증언하기 위해 청문회실로 들어가고 있다(사진 연합/ 1978.3.9.) 우측은 박동선의 변호사 윌리암 헌들리(William Hundley,1925.8.16.~2006.6.11) 하원 증언 이후 박동선은 3월 14일부터 17일까지 상원에서 신문을 받았다. 미 하원 윤리위는 2월28일부터 3월9일까지 7일간 총 40여 시간에 걸쳐 박동선을 비공개로 신문했다. 증언에서 박철언은 미 의원들에게 모두 75만 달러를 제공했고, 30~40만 달러는 정치헌금으로, 나머지는 사업적 거래를 위해 주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외국인 미곡상으로 정치헌금이나 돈거래를 한 것이며 한국정부 기관요원으로서 매수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1978년 10월 매듭지어 졌다. '연루되었다'고 거명되었던 90여 명의 미 의원들 중 실제로 2명만 기소됐고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었다. 박동선이 미 의원들과 넓은 관계망을 형성한 것은, 그가 미국 조지타운대를 졸업하고 쌀 중계권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에 백 만톤의 쌀을 수입했던 한국은 미국의 쌀 시장으로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1968년에 박동선은 리처드 해너 의원과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김형욱 도움으로 쌀 중계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쌀 생산국인 미국의 의원들에게 박동선은 관심 대상이었다. 박동선은 과거 재벌 그룹에 속했던 미륭상사의 막내 아들로, 평남 순천에서 1935년 출생했다. 1939년 가족들이 경기도 김포를 거쳐 1940년 경성으로 이전했다. 고교시절인 1952년에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 사립대 조지타운 대학에 진학했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조지타운 국제관계대학 학생회장이 됐다. 박동선은 놀라운 사교 능력과 세련된 매너로 호감을 주는 인물로 평가됐다. 박동선은 현재 83세로 무역컨설팅업체인 파킹턴사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차인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2014년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코리아게이트’를 둘러싼 당시 자신의 당시 활동은 박정희 정권의 하수인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한 것이었고, 미국에서는 자신 때문에 한국과 미국 사이가 나빠졌다는 시각이 있었다면서 과거 일을 더 거론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만약 책을 쓴다면 정확한 것을 밝히고 싶다는 취지를 비취기도 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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