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가 부채 경감 대책, 사채 신고하는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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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987년 농어촌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농가 부채 경감을 위해 저리자금을 지원하여 사채 부담을 해소해 주기로 했다. 3월 28일부터 절차에 들어가 전국 3만8천18개 마을에서 일제히 사채신고를 받았다. 사진은 경기도 고양군 벽제읍 사리현 2리에 거주하는 농민들이 사채신고를 하고 있다(사진/1987.3.28.) 농기구를 몰고 신고처에 오는 농부가 보이고 한복 입은 노인들이 여러 명이다. 좌측 뒤에 한복 입은 노인은 당시 노인들이 많이 썼던 검정색 ‘개리슨캡’형 모자를 쓰고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하려면 이용자는 신고소에 와서 비치된 ‘사채대체 자금지원신청 접수대장’에 채부액과 융자신청액, 영농규모, 연간소득과 사채권자 주소 성명 등을 기재해야 하고, 기재내용이 허위가 아니라는 각서를 붙여 제출해야 했다. 영농심사위원회는 4월3일에 접수를 마감한 후, 심사를 마치고, 읍·면 동장에게 신고하고 읍·면 동장은 다시 농·수·축협에 이를 통고하고, 대상자와 자금별 지원 금액에 이상이 없을 경우 4월 21일부터 대금을 방출했다. 1가구당 1백만원까지 연리 8%로 대환해주고, 추가로 1백만원까지 14.5% 상호금융자금으로 전환시켜주는 방식이었다. 사진의 고양군 경우, 마을 영농회관에 사채 신고소가 설치됐는데, 신고가 7건 접수되었고 사채 신고금은 1천2백만원이었다. 벽제읍 한 마을 경우 25명이 3천2백만원의 사채 대체자금을 신청했다. 또 충남 소호리는 51가구 중에 26가구가 2천5백여 만원을 신고했다. 당시 농민들이 사채를 쓸 경우 대개 월 2푼5리에서 3푼까지 사채이자를 냈다. 즉 연간 30% 혹 36% 이자를 내고 있었다. 이 대책은 농어민들이 큰 관심을 보였지만 사채전주를 밝힐 경우, 급전을 빌어쓰기 어려울 것을 우려해서 신고를 기피하기도 했고 소액사채와 단기성 사채 신고는 저조했다. 또 당시 전산화 처리가 되지 않아, 절차 방식을 거치면서 신고자 정보가 쉽게 노출되는 구조다. 신고자 정보가 읍·면 동장을 거치면서 누가 누구의 사채를 얼마 쓰고 있는 지 알려지게 되는 프라이버시가 침해받기 쉬운 구조였다. 신고자 정보가 악용될 여지가 너무도 컸다. 다행히 당시 사람들이 지금과 달리 ‘영악’하지 않아서 인지 이와 관련된 정보 유출 관련 범죄가 보도된 것이 없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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