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녹화 '열정 시대' 1974년 식목일 걸스카웃 나무심기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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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5일 식목일을 맞아 경기도 양주군의 한 야산에서 걸스카웃 학생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사진/ 1974.4.5.) 70년대에 식목일은 ‘동원령’이 떨어지는 날이었다. 공무원, 군인,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나무심기 행사를 했다. 식목일은 1946년 4월2일부터 국가적 행사로 기념됐다. 조선 해방기념과 녹화운동의 신기원을 위해 식목주간으로 하고 돈암정 소재 서울여자 기예학교에 교정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이자리에 김구 주석, 이승만 박사, 김규식 박사, 조소앙, 이훈구, 조병옥, 유억겹 등과 미 군정청 직원과 각 정당 단체 대표자 3천5백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을 하고 김구는 돈암정 국유지에 기념식수를 했다. *(돈암정은 일제 강점기때 명칭으로 현재 돈암동/ 서울여자 기예학교는 폐교됐고, 이 자리에 현 한성여자고등학교가 설립) 일제 강점기에도 ‘산림육성책’이 있긴 했지만 실효가 없었다. 해방후 미 군정청 농상국은 1946년 2월부터 식목운동을 전개했다. ‘산림’ 의 중요성과 ‘산림복원’ 개념이 ‘행정기관’에 인식됐고, 이후 매년 식목일을 기념하고 식수행사를 벌여 국민들에게도 ‘식목일’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았다. 산림육성에 대한 인식으로 이승만 정권 때 1949년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으로 식목일을 기념일과 공휴일로 지정했다. 1960년에 폐지하고, 3월15일을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 지정하였으나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1961년에 공휴일로 부활시켰다. 1982년에 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2006년부터 다시 공휴일로서는 폐지되었다. 한편 식목일에 나무심기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인 것은 대통령 박정희 때부터였다. ‘1984년 임업 통계 요람’에 따르면 남한 전체 임목 면적의 84%가 20년생 이하라고 한다. 나무 10그루 중 8그루 이상이 박정희 시대에 심어진 것이라는 것. 국내 산야는 일제강점기에 무분별한 채벌과 산림자원의 착취가 있었고, 이후 6.25전쟁으로 산림이 훼손되어 민둥산이고 붉은 산이었다. 대통령 박정희는 1964년 12월 서독 방문 때, 서독의 정돈된 논과 울창한 산을 보고 ‘산림육성’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는 녹화촉진임시조치법을 만들어 식목일이 되면 공무원,군인, 병역 미필자들을 동원해서 나무심기, 사방사업을 벌였고 학교도 학생들 동원해서 식목행사를 지원했다. 박정희는 1973년 1월에 손수익을 산림청장으로 임명하고 산림녹화를 수행하게 했다. 손수익은 6년 가까이 재임하면서,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1973~1982년)을 세우고 4년 앞당겨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정희는 1972년 농림장관과 초대 농수산부 장관 김보현에게 ‘소에게 끓인 여물을 먹이느라 땔감이 많이 들어가니 생풀을 먹이는 방안을 강구해 보라’고 한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소에게 생풀 먹이기 운동을 벌였고, 1973년부터 농가 아궁이 개량 사업을 벌여 나무 대신 연탄 사용을 장려했다. 1975년부터 나무와 수자원 보호를 위해 낙엽 채취 금지령도 내렸다. 박정희는 임도(산불 진화나 병충해 방지 작업 등을 위해 만든 산길)을 횡으로 내는 이른바 ‘추풍령식 조림’도 제안하고 ”가을이 되면, 자기가 심었던 나무가 잘 자라는지 반드시 확인하라“고 지시하여 1977년부터 11월 첫째 토요일이 육림일로 지정됐다. 한편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산간 지방에 흩어져 살던 30여만 화전민 가구를 정리했다. 또 1978년 4월 ‘산불 예방에 관한 대통령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여 산림 녹화에 손실을 억제 했다. 유엔은 한국을 이스라엘과 함께 20세기의 대표적 녹화 사업 성공 국가라고 꼽는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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