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난파음악상 수상, 20세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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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4월10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제1회 난파음악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사진/ 1968.4.10.) 20살의 앳된 정경화는 당시 정장 예복에 맞추어 유행했던 헤어스타일인 올림머리에 한복차림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남산 중앙방송국(HLKA) 뜰 앞에서 열린 시상식과 함께 난파상 제막식도 거행됐다. 당시 남산중앙방송국(KBS전신)자리는 일제강점기간 동안 1906년부터 1926년까지 조선통감부(후일 조선총독부)자리 였다. 조선시대 왜성대라고 불리는 이곳은 1884년 갑신정변 후, 일본과 한성조약이 1885년 체결되면서, 조선이 일본에게 부지를 제공하여 일본공사관이 지어졌는데, 일본공사관이 통감부 청사가 된 것이다. 1999년부터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홍난파 음악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음악계 선구자인 홍난파(1898.4.10.~1941.8.30.) 탄생 70년을 맞아 그의 업적(본명 홍영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난파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중)가 마련한 것이었다. 제막식에서 난파건립상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김팔종, 홍난파 친구대표 이관구, 이사장 윤석중, 홍난파의 부인 이대형, 음악계 제자 등이 참석했다. 이날 1회 난파동요콩쿠르상은 김애경(계성국교4년), 1회 난파장학금은 이경임(숙대 작곡과1년)에게 각각 시상했다. 2013년에는 소프라노 임선혜와 작곡가 류재준은 홍난파의 친일행적을 이유로 난파상을 거부해서 이 해는 난파음악상 수상자를 내지 않았다. 친일파로 분류되기도 하는 홍난파는, 그의 유족에 따르면, 홍난파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팔아서 독립군 군자금을 보내기도 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일본 종로경찰서 옥고에서 '늑막염'이 재발되어 72일만에 풀려난 후 3년간 병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홍난파 상 시상식과 홍난파 흉상 제막식을 일본 통감부 자리에서 연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로 보여진다. 한편 2017년 제49회 난파음악상 수상자는 인천시립합창 명예예술감독 윤학원이었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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