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령’ 철종 어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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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초, 6·25사변 중 화재로 1/3이나 타버렸던 조선 제25대 왕 철종(1831~1863)의 어진을 최광수 박사가 복원하여 문공부에 기증했다. 전해지는 철종의 어진은 철종 승하 2년 전인 1861년 철종 12년에 그려졌다. 철종 즉위 3년에 그렸다는 첫 어진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두 번째 그린 어진은 강사포(임금이 입는 붉은색 예복)본과 사진과 같은 군복본이 있었으나 현재는 군복본만 전해진다. 군본을 입은 전신 어진으로는 철종 어진이 유일한 것이다. 당시 어진 화가인 이한철과 조웅묵이 주관 화사로, 김하종, 박기준, 이형록, 백영배, 백은배, 유숙 등이 도와 경희궁 흥정당에서 제작했다. 어진은 창덕궁 선원전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6·25사변 중에 부산으로 옮겨 보관되던 중 화재로 일부가 타버렸다. 철종 어진의 특징은 군복의 화려한 채색, 세련된 염색, 정교한 무늬 표현 등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일부 소실된 원 어진은 크기가 202.3cmX 107.2cm로 보물 1942호이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87년 일부가 훼손된 철종 어진을 한국전통미술인회장 최광수 박사가 문공부의 승인을 받고, 회화와 복식 전문가인 안휘준, 유희경 문화재위원, 이강철 문화재전문위원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복원했다(사진 연합/ 1987.6.7) 최광수 박사는 복원 작업을 하는 3개월 14일 동안 새벽에 목욕재계를 하고 한복에 갓을 쓰고 의관 정제하고 붓을 들었다고 전한다. 복원시킨 어진에서 철종은 공작삭모(털을 잘라 만든 모자)를 쓰고, 패영(일종의 모자끈으로 재질은 주로 수정)이 달린 전립(구군복에 갖춰 쓰는 갓)을 썼고, 군복은 양태 문갑사(품질이 좋은 비단인 얇은 갑사 바탕에 평직과 능직을 바둑판 모양으로 배합해서 둥근 잔무늬를 나타낸 꼬임무늬 천)로 만들었고 가슴과 양 어깨에는 용보(장식포장)가 있다. 오른손은 등편(채찍)을 잡고, 왼쪽 엄지는 은잔 고리에 깍지걸이를 했다. 한편 철종(1831~1863)은 갑작스럽게 1849년 제25대 왕위에 올랐다. 그가 ‘강화도령’으로 불리는 것은 그의 아버지 전계대원군 광과 함께 강화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철종의 이름은 ‘이변’으로, 제22대 정조대왕의 동생인 은언군의 손자다. 은언군은 사도세자의 서자로, 아들 전계대원군 광이 있었다. 전계대원군은 ‘역모죄’로 몰려 아들 이변과 함께 강화도로 위배되어 그곳에서 빈농으로 살았다. 아들 이변(철종)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정조의 아들인 제23대왕 순조가 11세에 즉위했고 왕위를 아들 세자(익종)에게 물려주려고 했으나 세자가 먼저 죽어 순조의 손자인 헌종이 제24대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헌종도 23세로 후사 없이 죽어서 당시 왕실은 영조의 유일 혈손인 ‘강화도령’ 이변을 덕원군으로 입궁시켜 왕위에 올렸다. 철종은 학문과 거리가 멀고, 정치에도 무지하여 안동 김씨의 세도가 더욱 심화되고 조선의 몰락은 가속화됐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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