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 포항제철 핵심시설 제선공장 준공, 첫 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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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우리나라 경제를 이끈 상징 포항제철. 1973년 6월8일 포항제철의 핵심시설인 제선공장 준공식이 열리고 화입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 이낙선 상공장관과 박태준 사장 등이 참석했다. 제선공장 용광로인 고로에 점화를 하고 첫 출선이 되자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1973.6,8) 함께 있던 박태준은(사진 중앙 회색옷과 모자 착용)손은 들고 있지만 표정은 그간에 겪어왔던 어려움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제선공장의 용광로인 고로는 높이는 지상 100m로 종합제철의 상징이다. 제선공장 완비로 포항제철은 제철 제선 제강 압연 등의 일관공정 체제를 갖춘 종합제철의 면모를 갖게 됐다. 연간 155만톤의 철광석을 처리하고, 95만톤의 선철을 생산하게 됐다. 또 부산물인 슬래그 38만톤과 제선공장의 에너지인 BFG(고로가스) 3억1천만N㎥ 생산이 가능해졌다. 포항제철은 경남 포항시 남구 괴동동에 1970년 착공 이후 4년 만에 준공에 외자 1억6천8백만 달러, 내자 5백42억원 등 모두 1천2백15억이 투입됐다. 포항제철은 2차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건설됐다. 1963년에 5개국의 8개사로 구성된 차관단(JKISA)이 건설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1967년 7월에 포항을 제철소 입지로 결정하고 9월에는 대한중석을 종합제철사업의 주체로 선정했다. 대한중석의 사장이었던 박태준은 1968년 4월1일에 대한중석을 모태로 창업사원 39명과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포항종합제철 창업식을 가졌다. 하지만 KISA 자금 조달이 안되어 어려움을 겪던 중에 박태준은 약 8천말 달러가 남아있는 대일 청구권자금을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은 청구권 자금에 돈의 용처를 명시해두었는데, 박태준은 용처를 바꾸기로 하고, 일본 내각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지원 결정을 얻어내어 건설에 착수하게 됐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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