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자이며 한국 천주교 최초 수덕자 홍유한 친필 세상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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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이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수덕자(修德者, 신부처럼 수행하는 자) 홍유한(1725~1785)이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서한 등 문서 500여 점이 1980년 7월3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사진은 홍유한 선생의 친필 (사진/ 연합,1980.7.3.) 이 자료들은 경북 영풍군 단산면 구구리에 거주하는 홍유한의 7대 손인 홍관희가, 동년 6월 24일 한국천주교 창립 성조 요한 이벽의 묘를 성역화한 천지암에 기증하면서 공개되기 시작했다. 홍유한은 1760년부터 1782년 사이에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종교적 차원으로 실천했다. 홍유한은 은거하면서 독서로 천주교 교리를 이해하고 실천했다. 이는 이승훈이 천주교에 입교(1784년 1월)한 것보다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홍유한 후손에 의해 알려지게 된 서한들은 실학자들이 천주교를 논한 내용으로, 홍유한이 자신의 아들 악질이 권철신 문하에 들어가 있을 때 보낸 친필서한 108편과 홍유한의 스승이었던 이익의 아들과 조카들이 홍유한에게 보낸 편지 180편, 권철신, 이총억, 이기양 등 당대 학자들이 홍유한에게 보낸 서한 212편, 홍유한의 손자가 기록했던 이익과 홍유한 사이에 대담 내용 등 문서이다. 천주교는 이조판서 이수광(1563~1628)이 중국 베이징에 가서 이태리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한문으로 지은 ‘천주실의’2권과 ‘교우론’1권을 갖고 돌아와 서학으로 도입됐다. 이수광은 1614년에 ‘지봉유설’에 천주교를 소개했다. 또한 이벽(1754~1785)은 이익의 제자로 이가환, 정약용, 이승훈, 권칠신, 권일신 등과 교유를 했다. 명나라 천주교 서적들은 천주교 교리, 철학 이외 서구의 과학, 천문, 지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벽은 이런 서적들을 탐독하고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수용하고 동료 남인학자들을 모아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실학적 인식을 공유하면서 천주교 지식을 동료학자들에게 전하고 자생적 천주교 신앙운동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편 허균도 1609년 명나라 사절단 수행원으로 가서 천주교 기도문을 얻어왔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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