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기 홍랑의 연정 시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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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관기였던 홍랑이 그의 연인으로 조선 8대 문장가로 알려진 고죽 최경창(1539~1583)에게 보낸 연정 시조와 둘이 만난 사연을 적은 기록이 연세대 김동욱 교수에 의해 공개됐다 (사진/ 연합 1981.7.4.) 시조는 ‘묏버들 글힘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된 자시는 / 창밧긔 심거두고 보쇼서./ 밤 비에 새님 곳 나거든 / 나린가도 너기소셔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이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겨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에 곧 나거든 저인가 여기소서’] 이 시조는 홍랑은 최경창에게 보낸 것을 최경창이 옮겨 쓰고 한역했던 것인데 ‘고죽집’이 발간되면서 후세에 알려졌다. 기록된 두 사람이 만난 사연에 따르면 최경창이 함경북도 평사로 있을 때 1573년 관기 홍랑을 만났다. 홍랑은 함경남도 홍원 출생으로 최경창이 다음해 이임할 때 영흥까지 따라가 배웅했다고 한다. 이별하며 돌아오는 길에 홍랑은 함관령에 이르러 이 시조를 지어 고죽에게 이를 전했다고 한다. 최경창은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이이, 송익필, 최립, 정철,서익 등과 교류했는데 최충의 18대 손이다. 1568년(선조1년)에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가 됐다. 북평사를 이임하고 선조 8년 1575년 사간원정언이 됐다. 하지만 홍랑에 대한 소문으로 최경창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게 되었고 1576년(선조 9년)에 영광군수로 좌천됐다. 뜻밖의 발령에 최경창은 충격을 받고 사직했다. 이후 다음 해에 대동도찰방으로 복직했고, 1582년(선조 16년)에 선조는 고죽을(53세) 종성부사로 제수했는데 최경창이 상경도중에 종성객관에서 사망했다. 최경창 사망 후 홍랑이 그를 위해 9년간 시묘를 했다고 한다. 홍랑은 고죽의 아이를 낳았는데 두 살 때 여의고 이후 삶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편 최경창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에 부부 합장묘로 되어 있고, 고죽 최경창 묘 아래 홍랑의 묘가 있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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