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8월 요트 파랑새호, 한국 최초 75일간 항해 태평양 횡단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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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3일 울산을 출발한 28세의 요트맨 한국의 두 청년이 망망대해 태평양을 75일간 항해하여 마침내 8월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쪽 산타모니카의 마리나 델레이 요트항에 도착,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노영문(사진 우)과 이재웅(사진 좌)이 기뻐하며 손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사진/ 외신연합 1980.8.6.) 파랑새호에 몸을 싣고 태평양의 바다와 파도,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때로는 경외와 신비에 빠져들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받아 극한 두려움과 싸우면서 마침내 미션을 완수했다. 모터 고장으로, 당초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는 못가고 LA에 도착했지만 75일간의 파랑새호 태평양 횡단은 일본 기록을 깬 쾌거였다. 1962년의 일본 기록은 94일로 파랑새호가 19일을 앞당겼다. 파랑새를 몰았던 두 요트맨 중 울산 출신의 노영문은 당시 요트 제작사를 다니고 있었고, 이재웅은 고창이 고향으로 집 창고에서 요트를 만드는 정도로 요트에 관심이 깊었다. 요트 파랑새호는 경기정 요트와 달리 장기간 횡단에 맞게 제작됐다. 무게는 4.8톤으로 알루미늄 소재로 선체 하단에 선체 중심을 잡는 쇠덩이(바라스트킬) 2.4톤짜리가 달려있다. 선체 길이는 10m, 선체 폭 3m, 엔진에 해당하는 마스트가 13m이고, 취짐 시설과 조리대를 갖췄다. 출입구를 닺으면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 요트는 1978년 경일요트산업이 수출용 샘플로 제작한 것으로 미국 나프코사에 3만 달러에 팔렸다. 우리나라에서 요트로 태평양 횡단을 시도한 것은 이에 앞서 1977, 78년 두 차례 있었지만 다 실패했다. 파랑새호는 90일 분의 식량과 식수를 실어 울산을 출발했다. 부산을 경유해 갈 예정이었으나 파도가 3~4m로 높아, 바로 시모노세키로 향했다. 항해 중에 비바람과 10m 높이의 파도와 싸우면서 돛이 찢겨지기도 하며 무풍지대에 갇혀 며칠을 꼼짝 못하기도 했다. 또 무전기가 고장나서 20여 일 교신을 못하기도 했는데 일본 어선에 발견되어 항해를 계속했다. 우리나라에 요트경기가 소개된 것은 노영문의 모교인 인하대학 요트부가 창설되며 싹텄다. 1974년 대한체육회 조정협의회 산하 단체로 요트연맹이 창설되고 보급이 시작됐다. 이후 인하대, 숙대, 이대, 한양대 등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1979년 3월 요트인들의 요트협회를 구성했다. 파랑새호의 태평양 횡단은 우리나라 요트협회 창립 1년 만의 결실이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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