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 작품 34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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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타계한 서양화가 오지호 작품 34점을 그의 부인 지량진이 동년 8월 7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사진은 기증된 오지호의 작품 중 하나인 ‘남향집’ (사진/ 1982.8.7.) 남향집은 오지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오지호가 일본서 미술공부를 하고, 1931년 서울에 돌아온 후 생계를 위해 1935년에 개성의 송도고보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1944년까지 살았던 집을 그린 것이다. 등록문화재 제536호로 된 이 작품은 1939년 작으로 80x64cm 캔버스에 유채화다. ‘남향집’은 캔버스를 시원하고 대담한 구도이다. 초가와 고목으로 종횡의 균형을 잡으면서(사진은 흑백이나 원 작품에서)고목의 그림자가 파란색으로 초가에 드리웠다. 빛은 강렬할 때 푸른빛을 튕긴다. 빛이 작품을 강하게 잡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문을 나서는 빨간 옷을 입은 계집아이는 오지호의 둘째 달 금희이며, 돌벽 밑 양지에서 졸고 있는 흰 개는 애완견 삽사리라고 한다. 어린 금희가 손에 쥔 것은 개 밥그릇인지 모른다. 금희가 다가가면, 바닥에 닿은 배를 작게 들석이며 졸던 삽사리는 눈을 천천히 뜨고 꼬리를 부드럽고 정겹게 흔들 것 같다. 초가집 위로 청명한 파란 하늘이 펼쳐있고, 화폭은 얕은 채도의 색상을 써서 이 작품은 맑고 투명한 공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남향집’이 주는 메시지처럼 오지호는 서양의 인상주의를 한국적 감성으로 토착시킨 대표적 화가이다. 서양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에 대한 실증적 탐구를 보여주었다면, 오지호는 빛을 받고 있는 색채와 형상을 통해 내재된 생명력을 표현하며 한국적 정서를 담아냈다고 평가된다. 1905년 전남 화순에서 8남매 중 막내로 출생한 오지호는, 아버지 오재영이 구한말 보성군수를 하던 중 1919년 3·1운동 후 비분해 자결한 것을 경험했다. 오지호가 15세 때였다. 아버지 영향으로 오지호는 강경한 성품과 민족의식이 강렬했다고 알려졌다. 오지호는 전주고보에 다니다가, 서울의 휘문고보로 편입했다. 휘문고보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도쿄미술학교에서 유화를 배웠던 미술교사 고희동 덕분에 오지호는 신문화와 신미술을 접했다. 오지호는 1923년 고려미술원에 다녔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1926년 도교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는 1948년부터 광주에 정착해서 조선대학교 미술과 교수를 지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1982년 78세로 작고했다. 오지호의 대표작은 아내의 상(1936), 사과밭(1937), 도원풍경(1937), 남향집(1939), 가을풍경(1953), 추광(1960), 열대어(1964), 항구(1967), 무등산(1969), 함부르크 풍경(1974) 등이 있다. 오지호의 두 아들 오승우(1930~ ), 오승윤(1939~2006)도 화가이며, 손자 오병욱, 오병재도 화가, 오상욱은 조각가로 활동 중이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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