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기통신 10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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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9월 28일 경성과 인천 사이의 전신업무를 총괄하는 한성 전보총국이 개국됐다. 우리나라는 이를 한국 최초의 전신 개통일로 삼고 있다. 100주년이 되는 1985년 체신부는 전기통신 개통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했다(사진/ 1985.9.28.) 우리나라에 전신시설 개통 후 100년이 지나고 다시 10여 년이 더 지나 1990년대 중후반에 전기통신산업의 진화 발전으로, 새롭게 조성된 산업 환경을 기반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주축으로 하는 IT산업의 싹이 맹렬하게 자라면서 20여 년이 또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는 전기통신산업을 넘어 IT강국이 되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전보를 칠 수 있게 된 것은 1885년 9월 28일 한성 전보총국 개국되면서 가능해졌다. 한성전보총국터는 현재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 세종로공원 녹지터이다. 한성 전보총국은 고종22년 1885년 6월 조선과 청나라 간에 조청전선조약이 체결로 설립됐다. 이보다 2년 앞선 1883년에 덴마크 대북부전신회사가 부산~일본 대마도~일본 나가사키를 연결하는 전신 선로를 개설했지만 이 전신 시설은 일본인만 사용했다. 청나라는 조선에서 터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보면서 일본에 앞서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전신 선로를 서둘렀다. 청은 덴마크 기술자를 데리고 와서 조선을 설득하여 전보를 칠 수 있는 전신 선로를 설치하는 조청 전선조약을 체결시켰다. 인천을 기점으로 하여 한성~청나라 봉황까지 연결하는 전선(=서로전선)을 가설한 것이다. 청이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고 조선은 노동력과 전신주, 전선경비병력을 투입했다. 1885년 7월에 시작한 서로전신 건설공사는 11월 19일 완공됐다. 설치 건설 중에 전신업무를 총괄하는 한성전보총국을 9월28일 개국하고 그해 10월 3일 경인간(한성~인천) 전신 업무를 개시했다. 한성 총국 아래, 인천, 평양, 의주 분국이 세워졌다. 전보국은 청과 조약에 따라 청나라가 운영을 맡아 직원은 청나라 사람들이었다. 기술습득을 위해 견습생은 조선인도 있었다. 전보는 한문, 영문, 불문 전보만 가능했고 요금은 거리를 계산하여 차등요금제였다. 한편 서로전신 건설에 농민들이 거의 무상으로 노동인력으로 동원됐고 청의 착취와 횡포가 극심해서 동학혁명(동학농민운동, 1894년)때 농민들은 ‘전보국이 민간에 폐를 끼치니 없애버리자‘고 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군은 서로전신선로를 점령하면서 한성전보총국은 해체됐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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