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국군의 날 행사 참석 박정희, 령부인 육영수의 49재 하루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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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여의도 5·16광장(1999년 여의도공원으로 변모)에서 열렸다. 행사장 귀빈석에서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우리 군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동년 8월 15일, 친북단체인 조총련 소속인 문세광의 총에 령부인 육영수가 작고하여, 박정희는 령부인 역할을 대신하는 큰 영애 박근혜를 데리고 참석했다. 단상의 참석자들은 가슴에 축하리본을 달았으나 박 대통령의 양복 가슴에는 검은 리본이 달려있다. 이날은 령부인 육영수의 49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뒤에 서 있는 박근혜의 흰색 투피스 상의에도 흰색 리본이 달려있다. 박근혜 좌측의 경호실장 차지철도 축하리본이 없다. 육영수의 명복을 비는 49재는 10월 2일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 소재한 도선사 이외도 조계사, 봉원사 등 전국 주요사찰 등에서 열렸다. 당시 우리 군 병력은 60만 국군과 250만 예비군이 있었다. 이날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박정희, 삼부요인, 외교사절 등 140여 명의 경축사절과 40여 만 명의 인원이 참관하는 가운데, 우리군은 다양한 ‘공연작전’을 펼쳤다. 특전단원들이 1만2천 피트상공에서 고공낙하, 1천명이 태권도 시범, 도보와 기계화 부대의 분열, 공군기의 곡예비행 등을 보이고 곡사포, 박격포 등 기본 화기와 국산 군용차량 등이 위용을 과시했다. 이 자리에서 축사를 하면서 박정희는 8.15저격 사건 후 심경을 피력하면서, ‘각박한 현실’ ‘환상적인 낭만주의자’ ‘수백만 동포를 죽인 살인자’ 등 직설적 표현과 단호한 어조로 국내 상황을 설명하고 북한의 호전성에 경고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와 투쟁은 생존투쟁이라고 강조했고, 유신체제에 대한 도전은 ‘일부 인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부인을 총탄에 잃은 남편의 삭힌 분노와 대통령으로서 체제유지에 대한 경계심이 표출됐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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