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남대문 바로 옆 이관순 열사 동상 제막, 순국 50돌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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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장충단공원 남산2호터널 입구에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은 원래는 남대문 바로 옆 녹지대에(현재 숭례문 오거리 태평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것이었다. 1970년 10월 12일 오전 10시, 유관순의 순국 50돌을 맞아 그의 동상제막식이 남대문 녹지대에서 열렸다. 유관순 동상은 치마폭을 휘날리며 오른손에 횃불을 치켜들고 군중 앞에서 전진을 외치는 선도자 형상이다(사진/ 1970.10.12.) 이 제막식에 대통령 박정희와 삼부요인, 이화여중고 3천4백 명이 참석했다. 이 유관순 동상은 대한통운 회장 최준문이 헌금을 내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회장 장태화)가 조각가 김세중과 서예가 서명학에게 의뢰해 제작됐다. 동상의 높이 4.5m, 좌대 높이 7.6m로 청동 4톤이 투입됐다. 동상 좌석 둘레에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군상을 넣었고, ‘류관순 동상’ 이란 글자로 동상명이 새겨졌다. 유씨 종친회에서 성씨를 한글로 표기할 때 ‘류’로 표기한다는 결정에 따른 것이다. 한편 이 동상은 건립된 지 1년도 안되어, 1호선 지하철 공사 계획에 따라 서있던 남대문 녹지대에서 1971년 4월에 떨려나서, 장충단공원 남산2호터널 입구 쪽으로 옮겨졌다. 서울시는 남산2호터널 입구 주변에 5백만 원의 공사비를 들어 녹지대를 정비하고 1971년 11월 29일 동상 이전 제막식을 다시 했다. 이관순은 1902년 12월 6일 천안에서 출생했다. 1916년 미국인 선교사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하고, 1919년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했다. 당시 있었던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총독부 가 휴교령을 내리자 3월 8일 고향에 내려갔다. 고향에서 부친 유증권의 도움으로 3월 9일 밤 예배를 마치고 마을 유지들에게 경성 만세운동을 설명하고 4월 1일 아우내 장날 시위운동을 계획했다. 연기, 청주, 진천 등에 있는 개신교회와 유림계를 규합해서 4월 1일 아우내 장날에 수 천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현장에서 유관순 부모는 조선총독부 헌병 총에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고 유관순은 체포됐다. 유관순은 동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5년을 선고받았는데, 항소하여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유관순은 경성재판장에서 일본의 침략을 규탄 항의했다. 서대문형무소 복역 중에 1920년 4월28일 영친왕이 일본 왕족 이방자와 결혼하면서, 특사로 1년 6월로 감형됐다. 그러나 가혹행위로 1920년 9월 28일 18세로 사망했다. 1962년 정부는 유관순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했다. 한편 2013년 주일 대사관이 발견한 유관순 관련 기록을 국가기록원에 넘겼는데, 국가기록원이 11월 19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관련 문서에는 ‘유관순, 옥중에서 타살’로 기재됐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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