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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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는 찬반이 비등한 이슈로 최근 2018년 10월31일 한·미간 합의로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국군이 환수하기로 했다. 유사시 전작권을 갖고 있으며 한반도 안보에 절대적 역할을 해온 한미연합사령부는 40년 전인 1978년 11월 7일에 창설됐다. 사진은 당시 창설식에서 대통령 박정희가 한 장교로부터 부대기를 받아서 한미연합사 존 베시 사령관(연설단상 우측에 사령관 모자를 쓰고 있다/ John Vessey Jr. 1922.6.29.~2016.8.19.)에게 부대기를 수여하려고 한다(사진/ 1978.11.7.) 한미연합사령부 창설로 존 베시 대장은 유엔군 사령관, 주한미군 사령관, 주한8군 사령관, 연합사 사령관, 지상군사령관까지 맡게 됐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게 패하여 1945년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미군정이 남한에 실시되고,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이때 전시작전통제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넘어갔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작전지휘 일원화와 효율적인 전쟁지도를 위해 1950년 7월 14일 서한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했다. 6·25전쟁 휴전 직후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작전권 이양 상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종전이 아닌 휴전이므로 남한에 미군과 유엔군이 주둔하며 북한의 도발을 억제했다. 한편 한반도의 유엔군의 지휘체계는 1957년 7월 1일 유엔군사령부·주한미군사령관·미 제8군사령관이 겸직하게 되었고, 미 제8군 및 주한미군 지휘권은 태평양사령관으로 이관되었다. 박정희가 1961년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1961년 5월 26일 국가재건최고회의와 유엔군사령관 합의로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부에 귀속시키되, 일부 부대의 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1968년 4월 1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대간첩 작전 시 예비군 포함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행사하도록 합의했다. 1970년대 들어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국과 ‘핑퐁외교’를 트면서 1971년 닉슨의 대외 정책 변화로 1971년 3월 미군 제7사단이 철수했고, 유엔군 사령부 기능도 축소되는데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여전했다. 1976년 미국 카터 대통령도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남한의 안보는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연합사령부의 창설은 의미가 있었다. 한미군사협력과 유대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고 주한미군철수에 대해하여 작전통제권을 인수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고 한미군사관계가 ‘횡적인 관계’ 수립되었다고 평가됐다. 한미연합군사령부는 한반도에서 적대행위를 억제하고, 억제 실패 시 외부의 무력공격을 격퇴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한미군사위원회는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의 전략지침 또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의 결정에 따라 전략지시의 임무를 발전시켜 연합사령관에게 하달하고 연합사령관은 작전통제 할 한·미군 작전부대들을 국가통수 및 지휘 기구에 건의하는 운영체제이다. 최근 2018년 10월 3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James Norman Mattis) 미 국방장관은 '연합방위지침'을 도출해 냈다. 이 지침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미연합군사령부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한미연합사 창설 40주년을 맞아 한미 방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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