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사상 처음 피랍 외교관 레바논 주재 도재승 서기관 석방, 귀국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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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에서 1986년 납치된 후 억류 21개월이 지나 풀려난 도재승 서기관이 1987년 11월 9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 서기관 모습은 여위고 아직 긴장감이 잔존해 있다(사진/ 1987.11.9.) 레바논 주재 한국대사관 2등 서기관 이었던 도재승(45세)은 1986년 1월 31일 오후 3시경 베이루트 시내에서 무장한 4명의 이슬람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었다. 납치자들은 자신들을 ‘투쟁혁명세포’라며 리비아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재승은 1987년 10월 26일 억류상태에서 풀려났고, 프랑크푸르트발 대한항공 906편을 타고 11월 3일 귀국했다. 기자회견에서 도재승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석방 즈음 레바논의 아말 민병대로 옮겨서 5일 간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10월 31일 무장요원들과 함께 ‘베이루트’ 공항에 가서 공항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고 혼자 ‘제네바’에 도착했다. 억류기간 중에 첫 3개월 간은 하루 식사로 바나나 4개, 사과 오렌지 1개씩 배식받았고, 6개월 지나면서 샌드위치, 쌀밥, 수프 등을 먹을 수 있었다. 10여 차례 걸쳐 억류 장소가 바뀌었고 이동할 때 차 트렁크나 밀폐된 트럭 등에 실렸다. 지하 감방이나 창고 등에서 지냈고 다른 인질 5,6명도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한편 한국정부는 도재승 납치 당시 납치 이유를 몰랐고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도 서기관의 생존여부나 소재파악이 안되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외무부 발표에 따르면 도 서기관 석방되기 수개월 전에 ‘해결하겠다는 단체’가 나타났고 10월 초에 생존을 입증하는 사진과 편지가 입수되었다. 우리 외교관이 베이루트에 급파되어 레바논 당국자와 제 삼자를 통해 225회 접촉을 하면서 석방되었다. 그 내막과 관련하여 스토리를 다룬 신동아(1998년 1월호)에 따르면 도재승 석방은 한 한국 기업인에 의해 진척됐다. 한국 기업인은 오래 알고 지내던 미 기관 요원이었던 미국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미국인은 한국 정부 관리와 만나고, 유럽으로 가서 관련 정보를 얻었다. 결론적으로 피랍 목적은 몸값이었다. 미국인은 우리 정부와 여러 협의를 거쳐, ‘유럽팀’과 함께 도재승 석방작전을 펼쳤는데, 도중에 우리 정부가 ‘유럽팀’ 불신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전두환 정권에서 나머지 돈을 지불하지 않아 ‘유럽팀’ 리더가 자신의 돈으로 지불하고 도재승을 석방시켰다는 것이다. 도재승은 1942년 생으로,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부터 외무부에서 일했다. 1979년 호놀루룰 총영사관에서 부영사로 근무했다. 납치사건 이후 1988년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으로 일하고 1991년 외교통상부 영사과 과장, 1993년 주 함부르크 총영사관 영사, 1998년 8월 부터 2000년 2월까지 주 뭄바이 총영사관 총영사를 지내고, 2000년 7월까지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를 역임했다. 검도 공인 6단인 도재승은 외무부 정년퇴임 후 검도사범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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