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월, 동양 최대 공모선 개척호 선단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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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당시 동양 최대 공모선인 2만6천톤 급 개척호가 출어 준비를 마친 선단을 꾸려 북태평양을 향해 부산항에서 출항했다(사진/ 1981.1.7.) 공모선이란 어로 현장에서 어획한 수산물을 처리 가공하는 배로 공선(factory ship)이라고도 한다. 고려원양 소속의 공모선인 개척호는 1973년 12월 남아공화국에서 5백74만달러(23억원)를 주고 구입했다. 남아공 소속 당시는 Willem Barendz호였다가, 구입되면서 박정희가 유신호라 명명했지만 1977년 개척호로 개칭됐다. 길이가 206m, 너비 27.5m, 높이가 17층 건물과 비슷하고 최대속력 14.5노트이며 선원 5백 명이 승선할 수 있다. 올림픽 수영장의 8배 정도로 엘리베이터, 식당, 병원, 영화관이 있다. 개척호는 구입 후 북태평양에서 1차 조업을 완수하고 1976년 11월 돌아온 후, 유류파동과 2백해리 경제수역 등으로 부산항에 묶여 있다가, 4년 여 만에 북태평양으로 명태잡이를 나선 것이다. 공모선이 출항할 때 조업하는 여러 척의 어선(어로선)이 함께 움직인다. 이들 전체를 어선단이라고 한다. 어로선들이 조업한 어획물을 공모선에 보내면, 공모선에서 어획물을 제조 가공하고 창고에 저장시킨다. 개척호는 하루 5백톤씩 어획물 가공처리할 수 있는 가공 능력을 갖추었다. 1981년 1월 한미 어업 공동사업으로 6개월 간 항차조업을 나선 개척호는 ‘알래스카’어민들이 잡는 명태 7만톤 중에서 4만톤은 미국에 수출하고 3만톤은 국내에 공급했다. [헤럴드DB/ 우재복 기가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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