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서설 내린 1월, 민주화 변곡점을 향한 도전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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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지리산 자락의 1987년 1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상임고문과 민주산악회회원들이 보인다. 김영삼(1927.12.20~2015.11.22)은 지리산 등반을 하려고 전북 남원군 산내면 부운리 뱀사골 입구에서 등반회원의 도움을 받으며 등산장비를 확인하고 있다(사진/ 연합 1987.1.11.) 눈발이 날리는 지리산 자락에 선 60세의 김영삼. 그가 쓴 모자 아래 귓가에 보이는 힛끗한 머리카락은 그가 만26세에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걸어왔던 정치역정 궤도가 후반부로 접어 들고 있음을 대변한다. 지리산행을 위해 상도동 집에서 나오기 전에 김영삼은 당시 신민당 총재 이민우(1915.9.5.~2004.12.9)와 짧은 전화통화를 했다. 이민우와 불거졌었던 개헌추진 노선에 대해 봉합의 뜻을 주고받았다. 지리산 입구에서 채비를 마친 김영삼 모습에서 그의 특유의 입은 ‘시작하제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1987년 첫 달 지리산에 내리던 눈은 서설이었고 거산 김영삼의 지리 산행은 한국민주화 실현의 거보가 되었다. 1987년은 한국 정치 민주화 실현의 물고를 튼 분수령이 된 해였다. 1987년 1월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김영삼을 위시한 야당과 재야 세력, 대학생들은 '대통령 간선제 유지'를 위해 '호헌'을 주장하는 군부세력에 맞서 가멸차게 투쟁했고 6월에 이르러 ‘와이셔츠 부대’들도 적극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군부독재에 맞선 시위는 '6·10 민주화 항쟁'의 강열한 불길로 타올랐다. 거대한 민주화 흐름을 거스리지 못한 신군부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였고 정치권은 ‘87체제’로 한국의 민주화를 도모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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