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중앙청 연두기자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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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1월 18일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국무위원, 공화당, 유정회 당직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기자들 앞에서 3시간 10분 동안 연두기자 회견을 했다(사진/ 1974.1.18.)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서정쇄신을 위한 행정유신과 국민생활 안정화, 성장보다 안정 우선에 두겠다고 밝혔다. 중앙청에서 열리는 연두기자 회견은 1979년이 끝이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시해되었고 이어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후, ‘임시’ 대통령직에 앉은 최규하는 1980년 연두기자회견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었다. 한편 간접선거로 1980년 9월에 대통령이 되어 권력 전면에 막 나선 전두환은 기자 집단 대면이 불편한 듯, 1981년에 대통령 집무실에서 국정연설로 연두회견을 대신했고, 1982년에도 국회 국정연설로 갈음했다. 박정희가 연두회견을 가졌던 중앙청 제1회의실 벽은 순백색, 연설대의 벽 중앙에 국화인 무궁화 조형물과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봉황 문장이 걸려있다. 그 주위 벽에는 무궁화와 봉황을 형상화한 부조가 보이는데 일본 황실 풍이 느껴진다. 중앙청 건물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조선총독부로 사용하기 위해 1916년 착공하여 1926년 10월 완공됐다. 건물 설계는 독일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테(Geroge de Lanlande 1872~1914)가 1912년 설계에 착수하여 1914년 기초설계를 마쳤고 사망하자, 일본 건축가 노무라 이치로, 구니에다 히로시 등이 설계를 완공했다. 당시 일본은 독일의 프러시아(프로이센 공국)를 동경해서, 일본 본토와 식민지 일대에 독일풍 건축물을 세웠다. 이런 흐름과 맞물러 우리나라에도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섞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선총독부(중앙청)가 지어졌다. 1945년 해방 후에 미군이 조선총독부청사를 군정청으로 사용하면서 이때 캐피탈홀(Capital Hall)이라고 불러서 중앙청이 되었다. 우리 정부가 수립되어 중앙청을 정부청사로 사용했다. 행정부처가 늘어나면서 공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1982년 3월 18일 정부청사 분산 이전이 결정됐고 중앙청 내 있던 부처들이 1983년 5월 28일 모두 이전을 완료하여 중앙청의 청사 기능은 마감됐다. 연두기자 회견장이었던 중앙청은 1983년 5월부터 3년 3개월 동안 증개축 공사를 해서 1986년 8월21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관, 전용됐다. 이후 김영삼 문민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 일제 청산 정책의 일환으로 중앙청 건물은 1995년 2월부터 철거에 들어갔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으로 이전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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