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친필 옥중 일기 원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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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2월 11일, 안중근(1879.9.2.~1910.3.26.)의사가 여순 감옥 수감 중에 친필로 쓴 옥중기가 공개됐다(사진/ 연합, 1978.2.11.) 옥중기는 세로 19.5cm, 가로 12cm 크기의 종이 115쪽으로 검정색 잉크 펜글씨로, 한문으로 2만자가 쓰여졌다. 서체는 시원하게 힘이 넘치고, 균형과 멋이 더해 상당 수준의 미적 감각이 엿보이는 달필이다. 안 의사 친필로 이등박문(이토히로부미) 저격 관련한 내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일기는 당시 나가사키에서 금융업을 하는 와따나베 쇼오시(당시 84세)가 소장하던 것을 공개한 것이었다. 조일신문에 따르면 와따나베는 공개된 시점으로부터 50여 년 전에 미나미타키기에서 고미술품을 구하다가 사까이 가문의 여성 사까이 루인으로부터 이 옥중기를 2~3엔 주고 입수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할 당시 사까이 루이의 남편인 사까이 기메이는 조선총독부에서 경기도 경찰국 경무과정을 했고 안중근 의사를 하얼빈으로부터 여순까지 호송했다고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안 의사의 옥중기를 손에 넣었다. 안 의사 옥중기는 ‘1909년 12월 13일 시술’에서 시작하여 ‘1910년 경음(음력) 2월 5일, 무양(양력) 3월 15일 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필서’로 되어 있다. 옥중기에 안 의사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체포될 때까지를 기술했다. 옥중기를 통해 안 의사는 이등박문의 얼굴을 몰랐던 것으로 추정됐다. 일기에서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한 키 가 작은 한사람의 노인이 있었다. 저 노인이 이등박문이 틀림없을 것 같아 단총을 빼 쏘았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대한만세를 외쳤다’ 라고 기록됐다. 와따나베 쇼오시는 자신이 17살 때,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고 그때부터 안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와따나베는 오카야마현에 소재한 카사오카 시의 한 절에 보관 중이던 이 안중근 의사의 옥중기는 2월 13일 한국정부에 기증했다. 옥중일기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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