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JSA 공동경비구역, 관광객들 자유롭게 다니며 군사정전위원회 회담 구경

TwitterCyworld
이전
다음

1961년 6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관광객들이 주위를 구경하고 있다(사진/1961.6.24.) 당시 관광객들은 공동경비구역(JSA)을 자유롭게 이동했다. 판문점은 주막거리로 원래 지역 이름은 널문리. 널문리를 중국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 판문점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이고, 북한식으로는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판문군 판문점리이다. 6.25전쟁이 휴전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1953년부터 1976년까지도 사진처럼 양측 경비병이나 관광객 등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76년 8월18일 북한군이 미군을 도끼로 살해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나면서, 남북군사분계선 위에 시멘트 구조물(높이 5cm, 너비 50cm)을 만들어 남북 경계를 눈에 보이게 하며 관할 구역을 분할했다. 당시 사진의 관광객 중 한국 여성은 한복차림이고 외국인 여성들은 양산도 쓰고 허리 밸트를 한 ‘헵번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었다. 관광객 한 무리가 사진 우측 흰색 지붕의 건물 안을 구경하는 듯하다. 건물 입구는 헌병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그 시각 건물 안에서는 제124차 군사정전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6.25전쟁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북한 측 요청으로 열린 회의에서 북한 측 대표 장정환(당시 소장)은 16년 전 6.25동란은 미국의 도발적인 북침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허위 주장을 했고 이에 대해 유엔측 대표 웨랜(Robert Warren, 1917~2010)소장은 6.25전쟁 기념일마다 주기적으로 벌이는 악날한 선전책동을 중지하라며 6.25는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는 군사정전위가 열리는 가건물 몇 개 동만 있어 단촐했다. 1965년 우리 남측이 회의장 앞에 자유의 집을 만들었고, 북한은 1969년에 판문각을 지었고, 1985년 통일각도 만들었다. 우리 남측은 1989년에 평화의 집을 세웠다. 현재 군사분계선 위에는 7개 동의 가건물이 재정돈되어 세워졌고 중립국감독위원회와 군사정전위원회 본 회의장으로 쓰이고 있다. [헤럴드 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포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