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끊어진 평양 대동강철교 필사적으로 건너는 북한 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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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전세가 몇 번 뒤집히는 치열한 전투 중인 12월4일, 동해안 지역보다 3~4도가 낮아 매서운 추위로 유명한 대동강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북한 피난민들은 등에 피난 보따리 짐을 지고, 언제 무너져 내질지 모르는 차가운 철교를 부여잡고 강을 건너고 있다. 사진 뒤쪽은 대동강의 북쪽 강둑으로(당시 평양역 쪽) 차례를 기다리는 피난민 행렬이 보인다(사진/에이피 1950.12.4.) 이 사진은 당시 AP 종군기자 맥스 데스포(Max Desfor, 1913~2018)가 찍었다. 당시 37세인 맥스 데스포는 한국전쟁 취재를 위해 1950년 6월 미군 낙하산을 타고 북한 점령지에 잠입했고, 평양 인근에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피난민들이 대동강 강둑에서 부숴진 대동강 철교를 기어서 올라가 건너는 광경을 보게 됐다고 알려졌다. 이 사진으로 그는 195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동강다리는 평양시 황금동과 선교리를 연결하는 다리로 러일전쟁 당시 전쟁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경의선을 건설하면서 1905년 3월 완공한 철교다.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전세를 몰아쳐 불과 3일 만인 1950년 6월28일 서울을 점령했고 계속 남하해서 석 달여 만인 8월25일 낙동강 전선까지 위협했으나 우리 국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9월15일 맥아더 사령관이 유엔군을 이끌고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 우리군의 대반격으로 북한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군은 9월28일 서울을 수복했고 북한군을 몰아세우며 북으로 진격, 평양을 점령하고 10월에는 압록강 초산, 혜산진까지 진격해 갔다. 그러나 10월19일부터 중공군 병력이 압록강을 건너 몰려들자 UN군은 후퇴하면서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키기 위해 대동강 철교를 파괴했다. 이 철교는 전후 복구됐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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