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차이코프스키 콩쿨 2위 카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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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정명훈이 모스크바에서 1974년 6월부터 열렸던 제5회 차이코프스키 음악제 피아노 부문에 2위로 입상했다.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정명훈이 7월12일 오후 귀국,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카퍼레이드에서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두손을 들고 화답하고 있다(사진/ 1974.7.12.) 태극기를 들고 있는 21세의 청년 정명훈은 풋풋한 모습이고 자신감에 차있다. 차에 동승한 그의 부친 정준채(우측)과 모친 이원숙(좌측)도 기쁨의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나라와 소련 간 직항로가 없던 당시 정명훈은 일본을 거쳐 왔다. 정명훈은 도쿄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친 이원숙, 형 명수, 명근, 누나 명화 등을 만나 함께 KAL을 타고 12일 3시30분 김포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에서 부친 정준채, 누나 경화, 둘째 형 명철, 동생 명규가 정명훈을 맞이했다. 정명훈은 이날 시청 앞에서 문화공보부 주최로 열린 환영식도 참석하고 15일에는 청와대에서 대통령 박정희로부터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제는 최고 수준의 콩쿨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으며 4년마다 열렸다. 1974년은 6월11일에 개막되어 7월2일 마무리됐다. 6천 명을 수용하는 크렘린궁전에서 열린 이 대회에 참가자가 288명-- 바이올린 46명, 첼로 62명, 성악 73명이고 피아노 부문은 107명의 최다 출전자가 몰렸다. 피아노 최종 결선에서 1등에 Andrei Gavrilov(소련), 공동 2위에 정명훈과 Stanislav Igolinsky(소련), 3위에 Youri Egorov(소련), 4위에 Andras Schiff(헝가리)가 선정됐다. 1953년생인 정명훈은 뉴욕 매네스 음대(Mannes College of Music)에서 피아노 전공을 마치고 1974년 당시 지휘법 코스를 밟고 있었다. 5세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7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했고 8살에 이화여중고 주최 전국 아동콩쿠르에 입상했다. 이후 미국에서 음악수업을 받았다. 1970년 뉴욕타임즈 주최 WQRX피아노 콩쿨에서 1등, 쇼팡 콩쿠르에서 1등, 1973년에 뮌헨의 국제음악콩쿠르에서 2등을 하면서 세계적 음악가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영국, 스페인, 서독, 뉴질랜드 등에서 활동하면서 정명훈은 1975년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지휘도 공부하여 1978년 졸업했다. 줄리어드에서 공부 중에 1976년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 지휘로 지휘자로 데뷔했다. 한편 정명훈은 차이코프스키 음악제에서 받은 2등 상금은 2천 루불(2,680달러, 한화 약 1백만원). 그런데 소련에서 루불화가 달러로 교환되지도 않고 루블화 해외반출도 허용하지 않아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정명훈은 모스크바에서 소련산 화병 1개와 레코드를 구입하고 나머지 1천8백루불은 모두 비행기표로 바꾸었다. 당시 정명훈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여행을 많이 할 것이라 했는데, 후일 밝혀진 그와 여행 동행자는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인 구순열이었다. 정명훈은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인 4살 연상인 구순열을 사랑했다. 상금으로 예매한 비행기 티켓으로 둘은 카리브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는 부모에게 둘이 만나고 있는 것을 비밀로 했고, 1979년 정명훈은 구순열과 결혼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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