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재산, 토지만 여의도면적 7.7배. 국가환수금은 불과 6,96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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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이완용 재산 몰수’를 주장하는 시민들 집회가 1997년 8월 13일 김구 묘역이 있는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열렸다. ‘바른역사를 위한 국민연합’ 주최로 열린 이 대회서 40여 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거룩한 분노의 함성’을 터트리고 있다(사진/ 1997.8.13) 그 즈음 1997년 7월27일, 이완용의 증손 이윤형이 5년을 끌어왔던 소송에서 서울 북아현동 대지 2,372㎡(당시 시가 30억원대)에 대해 소유권이 인정된 판결을 받고 그 땅을 팔고 캐나다로 이민 갔다. 이완용(1858~1926)은 경술국치(한일합방) 1910년 당시 일제로부터 은사금 등으로 약 100만원(현재 200억원)을, 1907년 고종 강제퇴위 때 10만원(현재 20억원) 등을 받았다. 이완용은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에게 허용하면서 1만5천 달러를 받고, 한미 전기회사 설립에도 옥새를 위조해서 고종의 내탕금 40만원(80억원)을 횡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의 은사금, 업무상 뇌물 등으로 이완용은 군산, 김제, 부안 일대 논을 매입해서 전국에 부동산 2,233만4,954㎡(676만8,168평. 여의도 면적의 7.7배/ 토지대장 1,570만㎡, 임야 663만㎡ )을 소유했었다. 그러나 이완용은 그의 토지 대부분을 일본인에게 팔아 현금화했다. 일본인에게 처분된 토지는 해방 이후 모두 미군정에 귀속농지로 귀속됐고 1948년 한국인 소작농에게 분배됐다. 이완용이 토지이외 1925년 당시 보유한 재산은 300만원(현 시가 600억원)과 3천 평 넘는 자택(옥인동 19번지, 현재 옥인파출소, 아름다운재단, 옥인교회가 자리하고 있음)으로 알려졌다. 한편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조사위원회는 2006년 7월에서 2010년 7월까지 조사활동을 해서 재산 환수 작업을 벌였다.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 받은 자를 1차로 추려 454명이 되었고 최종 168명으로 압축됐다. 친일자가 후손들에게 상속시킨 부동산은 113만9645㎡으로 조사됐다. 이완용 경우, 상속되어 남아있던 토지는 31만4000㎡였고, 2007년 조사위원회가 국가로 환수시킨 이완용 땅은 1만 928㎡(약3,300평. 전체 0.04%가량)으로 약 6,961만원이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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