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대첩 축제--임진왜란 우리군 대승, 일본군을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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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승전을 기리는 제387주년 한산대첩제 기념식이 1979년 8월14일 한산도에서 열렸다. 당시 해군참모총장 김종곤, 군 고위장성과 내외빈, 해군 생도들이 참석하고,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한산도 해상에 해군함정들이 도열한 가운데 기념축포가 쏘아졌다(사진/ 1979.8.14.) 일본을 향해 있는 남해 상공으로 날린 축포에 일대가 진동한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화포가 포효의 굉음을 내며 남해 하늘을 가르고 날라 적확하게 일본군 배를 괴멸시켰던 그 대승의 영광이 다시 한산도 바다에 충만한 듯하다. 우측이 통영 쪽이고 사진 좌측에 한산도 자락이 보인다. 이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우리 조선 해군은 1592년 8월14일(음력 7월8일) 왜군과 접전해서 일본군을 대파했다. 한산대첩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이다. 임진왜란 중에 해상전에서 패배하던 일본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일본 수군 연합군을 편성해 경상도 해역으로 공략할 계획을 세웠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 장군은 7월5일(음력) 경상도 바다로 출전을 결정했다. 이순신은 자신의 맡고 있던 전라 좌군과 우수사 이억기의 수군, 경상 우도 수군을 합쳐 58척으로 출전했다. 7월7일(음력) 저녁 당포에 도착했다. 이때 섬 주민으로부터 일본 수군 배 70여 척이 견내량(사진의 좌측 아래 방향, 거제와 고성의 경계)에 정박해 있다는 신고를 받는다. 견내량은 암초가 많아 조선 해군의 판옥선으로 전투하기에 불리하므로, 이순신은 한산도 앞바다로 왜군을 유인하여 일시에 공격할 전략을 세웠다. 8월14일(음력 7월8일) 아군 5,6척이 먼저 일본군을 급습하고 위장으로 후퇴하자, 일본군은 이를 뒤쫓았다. 유인작전에 성공, 일본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자, 우리 아군은 학익진 형태(학이 날개를 펴듯 적을 둘러싸서 공격하는 진형)으로 일본군을 일제히 거북선으로 지자총통, 현자총통, 승자총통 등으로 공격했다. 격침 나포된 일본 수군배가 59척이었고, 6천~9천 명이 한산 앞바다에서 죽었다. 조선 해군은 전사 19명 전사, 부상자 114명이고, 한 척의 함선도 잃지 않았다. 왜군 14척의 패장병 400여 명이 한산도로 도망하여 10여일 간 굶주리다 겨우 탈출했다. 2019년 통영 한산대첩 축제는 8월10일부터 8월14일까지 진행된다. [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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