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병원선 유틀란디아호(Jutlandia) 임무 완료, 최종 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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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8월 16일 덴마크 국적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가 6·25전쟁 중 수행했던 임무를 최종 완료하고 귀항하기 위해 인천항을 떠나고 있다(사진/1953.8.16.) 이 병원선은 6·25전쟁 발발 후 1951년 3월 부산항에 첫 입항을 시작으로 모두 3차례 걸쳐 한국에 들어와 전투 중에 상해 입은 주한 유엔군과 민간인을 치료하고 또 상해 군인들을 각 해당국에 송환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병원선 유틀란디아호 역할이 중단되면서 덴마크로 최종 귀항하게 됐다. 귀선호에는 필리핀, 태국, 터기, 그리스, 프랑스, 벨기에 출신의 상해군인들이 승선해 있었다. 이날 유틀란디아호 귀선 환송식이 열렸고, 인천 시민들은 유틀란디아호 선장 카이 하메리히(Kai Hammerich)와 당시 인천시장 양문표에게 감사패를 전했다. 하메리히 선장은 인천시 총무과 소속공무원 오원근의 딸 현아를 후원하기로 하고, 덴마크로 데리고 자신의 가족들과 생활토록하면서 유학시키기로 했다. 오원근은 유틀란디아호 연락사무소에서 일하면서 하메리히 선장은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하메리히 선장은 오현아가 덴마크 유학 중에 교육비는 다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한편 병원선 유틀란디아가 운영되면서 전투 부상자 4,981명(24개국 부상자), 민간인 6,000명 이상이 치료를 받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이 병원선에서 치과 진료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UN측은 처음 아군 상해 병사들에 한하여 의료를 요청했으나, 유틀란디아 병원선 의료진은 하선하여 부산과 인천 등지의 고아원 병원 등에서도 환자들을 돌보기도 하고, 병상이 비인 경우, 선상에서 민간인도 치료했다. 유틀란디아호는 1934년 8월에 덴마크 동아시아 회사에서 건조한 화물여객선이었다. 8500톤급 선박으로 전장 130m, 배폭 19m, 물에 잠기는 부분은 11m. 한반도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덴마크 정부는 UN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표명하고 의료지원의 병원선을 보내기로 했다. 유틀란디아가 병원선으로 개조된 후 외관은 흰색으로 칠해지고 빨간 줄무늬를 두르고 줄무의 중앙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졌다. 수술실 4곳, 병원 분과 4곳, 병상 356개, X선 장비, 치과 수술대, 연구소, 약국, 특별분과가 설치됐다. 350개 병상이 있었다. 한 방에 의사와 간호사가 4명 배정됐다. 덴마크 적십자에서 유틀란디아호는 관리하고 운영하고, 동아시아 회사에서 승무원을 제공했고, 덴마크 정부가 항해요금을 지불했다. 유틀란디아호 선장 카이 하메리히(Kai Hammerich) 준장은 덴마크 적십자 의장을 그만두고 유틀란디아호에 합류했고 UN군과 협조를 위해 해군직은 계속 유지했다. 부의사는 모겐스 빙에(Mogens Winge), 함장은 크리스텐 콘드루프(Christine Kondrup)였다. 유틀란디아호는 1951년 1월23일, 덴마크 국기, 적십자기, UN군기가 걸고 승무원 97명, 의료진 91명이 승선하여 덴마크를 떠났다. 부산항에 도착하여 임무수행을 시작한 것은 1951년 3월 10일부터였다. 군인치료가 없는 병실 공간에서는 민간인들도 치료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냉난방 시설이 문제가 되어 1951년 8월 로테르담으로 가면서 환자들을 귀국시켰다. 1951년 11월 13일 유틀란디아호가 다시 한국에 입항했다. 승무원과 의료진이 교체됐고 200~250개 병상을 운영했다. 1952년 3월 29일 환자 194명을 태우고 다시 한국을 떠나 4월 21일 덴마크로 귀항했다. 그 시기에 1952년에 헬리콥터 데크 등 병원선 설비를 보충했다. 유틀란디아호가 인천항에 1952년 11월 20일 도착했다. 3번째 한국 방문이었다. 헬리콥터 데크 설치로 더 많은 환자를 빠르게 치료할 수 있게 됐다. 1953년 3월 한 달 간 301명 환자가 들어올 만큼 일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1953년 8월16일 최종 귀항으로 인천항을 떠난 유틀란디아호는 일본에 들려 8월 29일 도쿄를 출발하면서 229명의 포로환자를 선상에서 석방하고 1953년 10월16일 덴마크에 입항했다. 이후에 유틀란디아호는 1960년 9월 태국 라마9세 국왕과 시리낏 왕비가 스칸디나비아 지역 방문 때 왕실 선박으로 사용되었고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Margrethe II)가 해외순방할 때도 왕실선박으로 사용됐다. 유틀란디아호는 1964년 12월 19일 코펜하겐-방콕 항해를 마지막으로, 1965년 1월14일 빌바오(Bilbao)에서 해체됐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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