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국 미군, 일본 항복 받고 광화문 승전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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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한 후(1945.8.15), 1945년 9월 9일 하지 사령관이 이끄는 미군은 조선총독부를 접수하고 오후 5시경 제7보병 사단병사들에게 승전의 퍼레이드를 하도록 했다. 미군이 조선총독부를 나와 광화문 거리를 걷자 사람들은 미군을 향해 모자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한다. 어른들 틈에 어린이, 학생들도 끼어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철거되어(1995.8~1996.11) 현재는 볼 수 없다. 총독부 건물 우측에 성조기가 개양되어 있고, 성조기 뒤에 보이는 북악산도 미군의 퍼레이드를 내려다보는 듯하다(사진/ 1945.9.9.) 이보다 앞서, 미 진주군은 1945년 9월 9일 아침 8시에 서울에 들어왔다. 하지(John Hodge) 사령관이 이끄는 미군이 인천을 통해 서울로 진입, 서울역 앞에 당시 있던 세브란스병원(현 세브란스빌딩)을 거쳐서 광화문로를 통과해 일본의 조선총독부를 점거했다. 연합군이 서울에 들어오면서 서울에는 태극기, 성조기, 소비에트 연방, 중화민국 국기가 걸렸다. 하지(John Hodge) 사령관은 ‘조선총독부’에서 오후 4시30분 서명식을 통해 조선 최후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로부터 항복 문서에 사인을 받았다. 조선총독부 마당에는 일장기가 폐기됐고, 미군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항복문서에 아베는 주한 미군 사령관이 절차에 따른 태평양 사령관을 대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한 미군 사령관의 지시를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시행한다고 밝혔다.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와는 친인척이 아니다. 아베총리는 安倍다). 9대 마지막 조선총독으로 1944년 7월 부임했다. 재임기간은 짧았으나 조선에서 폭정을 자행했다. 물자, 인력의 수탈, 징집을 강행했고 국민의용대를 제창하여 독립운동가 색출에 총력을 벌였다. 일본천왕이 8월15일 항복 선언을 하자, 조선 거주 100만 명의 일본인 귀국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부인과 손자들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다가 폭풍으로 부산으로 되돌아왔다. 아베는 9월12일 미군의 명령으로 일본으로 퇴거했다. 일본으로 돌아가 연합국에 의해 전범으로 체포되었지만 무혐의로 석방되었고 1953년에 사망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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