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방앗간 풍경,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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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추석은 9월 11일에 들었다. 추석 전날인 9월 10일, 추석 명절에 쓸 송편, 백설기 등 떡을 준비하려는 손님들이 몰려들어 서울의 한 동네 방앗간이 몹시 붐빈다(사진/ 1973.9.10.) 당해는 정부가 허례허식 타파를 목적으로 만든 가정의례준칙이 시행되면서 맞는 첫 추석이었다. 농수산부는 쌀을 절약하고 간략한 제례를 권장하고 전국 방앗간에 모든 떡쌀에 밀가루를 30%를 섞도록 계몽하고. 각 일선행정기관에 지도단속반을 편성해서 떡방앗간 등을 대상으로 순회 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사진 속 방앗간은 함석 물받이가 달린 처마에, 가게 입구가 허름한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다. 입구 좌측에 널문(덧문)들이 포개있다. 방앗간 간판도 눈길을 끈다. 베니어판에 페인트로 투박하게 글자를 쓰고, 각목으로 둘레를 마감했다. 간판에는 ‘방아간, 떡전문·미수가루·매주가루·고춧가루’라고 씌어있다. 간판 아래 어린 소녀가 보인다. 고무신을 신은 ‘계집아이’는 땅에 앉지 않으려고 손을 앞으로 모으고(무게 중심이 앞으로)쪼그리고 있다. 건너편에 또래 사내 녀석은 손에 ‘뻥튀기’ 과자를 들고 있다. 방앗간 앞길에는 양은이나 함석으로 만든 다라이가 길게 늘어서 있고 유독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어른들은 하루 앞둔 추석 준비에 바빠, 쌀이 담긴 다라이 순서를 지키라고 아이들을 내보낸 것이다. 아직 여름 더위가 꼬리를 걸치고 있어 사람들은 반팔, 긴 소매 등 다양한 옷차림이다. 기다리는 것은 어른들도 쉽지 않다. 빠듯한 서울살이에도 추석 준비하는 사람들. 표정은 지치고 차림새는 허름하지만 견디며 끈기 있게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방앗간 문턱에 선 여성은 앞 사람의 것이 어떻게 되었는지 방앗간 안을 살피는 듯하고. 밖에 기다리는 아낙들 표정은 무료하기 그지없다. 지금은 송편이나 떡도 여러 종류로 상품화되어 나와 있다. 시장, 인터넷, 모바일 홈쇼핑 등에서 주문해서 추석 떡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당시는 방앗간에서 빻은 쌀가루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거나 떡을 만들어 차례상에 올렸다. 또 ‘주전부리’가 다양하지 않아 떡을 ‘과자’처럼, 간식처럼 먹기도 했다. 그즈음인 1972년, 식량쌀은 연간 약 2800만 섬(40억3천2백만kg: 1섬 144kg/ 현재 20kg짜리 포대로 2억1백6십만 개)이고, 추석떡 쌀로 13만7천섬(1천9백7십2만8천kg/ 현재 20kg짜리 포대로 98만6천4백개)이 소비된 것으로 알려졌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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