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개통, 국내 최대 통행량 기록- 폭주족의 ‘아우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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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16일, 자유로가 완전 개통됐다. 오두산 통잉전망대 인근 성동인터체인지에서 열린 준공식에서 당시 건설부장관 김우석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1994.9.16.) 자유로는 고양시 행주대교와 파주시 문산읍 자유의 다리를 잇는 고속화도로로 길이 46.6km 너비 51m의 규모다. 자유로 준공으로 행주대교에서 임진각까지 30분 정도로 주파가 가능해졌다. 토지개발공사가 시공사로 1990년 10월에 착공하여, 2차 구간인 통일전망대~자유의 다리 구간 건설이 완료된 것이다. 1차 구간인 행주대교 북단~통일전망대는 1992년 8월에 개통됐다. 육군건설단의 지원으로 건설되어 인건비가 들지 않았다. 자유로 명칭은 '자유의 다리’에서 따온 것으로, 가양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와 갈라지고, 자유IC에서 통일로와 합류되어 통일대교로 이어진다. 자유로 건설 취지는 서울과 일산 신도시를 잇는 역할로 1992년 완공된 일산 신도시의 교통편의를 도모하고 한강 범람을 막는 제방역할이었다. 10차선으로 일산둑(11.6m높이) 옆에 1.8m높게 조성됐다. 자유로의 노반은 향후 고속도로 전환을 예상하고 130km/h를 견딜 수 있게 포장했고, 또 북한과 전쟁 시에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도로에 탱크를 놓아도 무방하도록 하중 100톤을 견딜 수 있게 했다. 이런 특징으로 자유로가 개통되고 1999년까지도 밤이 되면 시속 110km 이상을 달리는 외제 스포츠카 등을 몰고 폭주족들이 모여들어 일반 통행차량들이 공포에 시달렸다. 개통 1년 후인 1995년 자유로에서 103건의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 자유로의 제한속도가 80km로 묶었다가 1999년 100km로 완화됐다.다. 자유로 노면이 노화되고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2000년 개통되면서, 자유로 폭주족들은 인천공항고속도로로 대거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자유로 주변의 개발이 급격해지면서 교통량이 폭증하자 이를 해소를 위해 2011년 1월, 운전신도시와 상암동을 잇는 제2자유로가 개통됐지만, 도로 교통량은 계속 증가해 2017년 하루 평균 이용차량이 22만4439대로 국내 최대치를 기록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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