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보낸 수해물품, DMZ 대성동 마을에서 하역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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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북한 적십자가가 우리 쪽에 보낸 수해물품이 DMZ 대성동 마을에서 남북한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 측에 인수되고 있다(사진/1984.9.30.) 마을길에 서 있는 플라터너스와 논밭의 작물은 엄청난 폭우를 견디어 내고 추수를 기다리며 한적한 가을날을 지나고 있다. 당시 수해는 역대급이었다. 7월 3일부터 영남지방에 내린 1백~2백mm 폭우가 전북 지역까지 걸치며 7월 9일 진정되었는데 사망 실종 47명, 재산피해 355억이 났다. 또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내린 폭우 중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지방에는 집중호우여서 한강 유역에 대홍수가 났다. 한강 인도교 수위는 11.03m로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1925년 대홍수 때는 12.26m, 1972년에는 11.24m). 전국적으로 사망 189명, 실종 150명, 부상 103명, 재산피해 2,502억원, 이재민 23만 명이 났다. 북한은 우리가 입은 수해의 복구를 지원하면서, 당시보다 1년 전인 1983년 10월에 북한이 버마 아웅산에서 벌였던 폭탄 테러로 추락했던 자신들의 국제적 입지를 만회하고 대내적으로는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우리 쪽 국민총생산은 북한의 5배, 1인당 소득도 북한의 2배에 달해서 북한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관계개선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북한산 물자 입수는 거의 40년 만이었다. 북한의 수해물품은 29일 오전 9시부터 우리 쪽에 들어왔다. 사진의 판문점 대성동에서 북한 트럭에서 하역되는 쌀은 이틀째 하역분이었다. 쌀포대에 ‘입쌀, 정미중량 50kg,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량곡수출회사 Made in D.P.R. of Korea’이라 적혀있다. 북한 트럭들은 이틀째도 오전 8시부터 판문점 서북쪽 72다리를 넘어와 쌀, 천, 약품을 하역시키고 오후 4시경에 작업을 마쳤다. 하역을 완료하고 우리 쪽 조철화 대표가 북한 백남준 적십자사 대표와 함께 승용차로 군사분계선까지 간 후, 이들을 전송했다. 북한이 보낸 총 수해물품은 쌀 5만섬, 시멘트 10만톤, 섬유 50만m, 기타 의약품 759상자였다. 입수 경로는 판문점 육로와 인천 서해상이었다. 해상으로는 시멘트가 들어왔다. 북한 흥남에서 연풍호(1만3천7백톤급), 향산호(1만2천9백톤즙), 원산에서 염분진호(9천9백톤급), 동해호(6천3백톤급) 등 모두 4척이 출항했다. 50kg짜리 시멘트를 싣고 서해상 우리 영해와 공해 분계선에 도착했다. 검역 등 입항절차를 마치고 오후 3시20분께 인천 북평항 앞바다에 도착, 내항으로 예인했다. 북한 화물선에 실린 시멘트는 대한통운 30톤짜리 대형컨테이너크레인과 북한 장산호의 5톤짜리 윈치2개를 가동시켜 하역했다. 북한은 남한의 수해 물자 지원을 위해 인력은 1천3백73명(보도 85명), 트럭 5~6톤짜리 370대를 동원했다. 우리 측은 북한 적십자 요원, 운전기사, 호송원, 기자들에게 답례용 선물을 전달했다. 모두 1천6백 개의 대형 여행용 가방에 적십자마크와 대한적십자사라로 쓰고 선물을 넣었다. 848개는 대성동 야적장에서 전달하고 나머지는 인천 북평항에서 전달했다. 내용물은 밍크담요, 카세트 라디오, 전자손목시게, 양복 양장지, 남성여성용 내의, 스타킹 양말 등 모두 17종과 또 부인용으로 조미료, 화장품, 스타킹, 브레지어, 어린이용 T셔츠, 운동화였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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