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보부장 김재규 등 임명, 3년 후 김재규 총에 저격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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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2월 6일 오전 청와대에서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신임 장관들과 중앙정보부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박정희(사진 우측)가 임명장 받은 장관들과 정보부장으로부터 선서를 받고 있다(사진/ 1976.12.6.) 신임들은 사진 우측으로부터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제1무임소장관 장경순, 통일원장관 이용희, 건설부장관 신형식, 문교부장관 황산덕(*법무장관은 사진앵글에 잡히지 않았다). 김재규는 건설부장관을 1974년부터 맡고 있다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된 것이었다. 임명장을 준 박정희는 김재규가 자신의 향해 총구를 겨누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 된 차지철은 2년여 앞서 1974년 8월 21일 경호실장에 임명됐다. 령부인 육영수가 그해 1974년 8월 15일 재일 친북단체인 조총련 소속의 문세광에게 저격되었는데 육영수가 생전에 박정희에게 차지철을 경호실장으로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6년에 청와대 내부 권력은 김정렴 비서실장, 김재규(1926~1980) 중앙정보부장, 차지철(1934~1979) 경호실장 체제로 형성됐다. ‘간신’으로 평판난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총애를 받으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김정렴이 비서실을 떠나고 김계원이 비서실장으로 오자, 차지철은 비서실을 간섭하고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도 동석하는 등 월권하며 박정희의 통치 판단력도 흐리게 했다. 이 과정에서 김재규는 차지철과 대립하면서 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쌓였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벌어진 대정부 민주화 시위인 부마항쟁 사건을 계기로 김재규는 박정희 암살을 도모했다. 김재규는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와 차지철을 저격했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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