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버스안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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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당시 서울시장 구자춘이 버스 안내양들에게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선물한 겨울내복을 전달하고 있다. 전달식장에 여릿한 어린 버스안내양들이 겨울제복을 입고 도열해 있다(사진/ 1978.12.20.) 박 대통령의 선물 겨울내의는 시내버스 버스 안내양 8천8백18명 전원에게 지급되도록 했다. 지금은‘버스안내양’을 볼 수 없지만 자가용 승용차가 대중화가 되기 이전 시기, 버스요금 토근 사용 혹 교통요금의 카드결제가 되기 이전 시기는 시내버스가 운전기사와 버스차장이 버스를 움직였다. 60~70년대 서울 버스정류장의 출퇴근 시간대에는 승객을 ‘꽉꽉’ 눌러 태우고 '오라잇’하며 버스차장이 소리를 지르고 차체를 두드리며 출발신호 보내면 버스들이 움직였다. 버스안내양 직업은 1961년 6월17일 교통부장관이 승객안전 운행을 위해 여차장제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파란제복을 입고 승객들로부터 버스요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어주던 버스안내양은 때론 승객들에게 심한 욕설도 들어가며 당시 우리 시대가 필요했던 ‘서비스’를 무던하게 제공했다. 버스안내양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일부 버스업체들이 저지르면서 이슈화되기도 했다. 1985년에 한 버스회사가 버스안내양 정년을 20세라며 해고하자 이에 항의하던 버스안내양이 구타당한 일이 생겼다. 회사 측은 18~20세가 애착심 많고 일도 열심히 하므로 정년을 20세로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런 문제에 대해, 버스안내양 정년 27세, 야쿠르트배달원 55세, 술집마당 50세, 해녀 50세, 화장품외판원 45세, 전화교환원43세, 다방마담 40세라는 판례를 내기도 했다. 한편 1982년 8월 10일부터 버스안내양이 없는 시민자율버스가 서울 시내 10개 노선에 시행됐다. 1984년부터 버스 하차 때 안내 방송 시작하고 버스 밸이 설치되어 버스안내양의 기능을 대체했다. 이런 영향으로 버스안내양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1985년 주요 도시 시내버스업체의 안내양은 4천7백84명으로, 2천7백여 명이 부족했다. 버스업체들은 효율적으로 안내원을 모집하기 위해 서울시버스조합에서 일괄 모집을 실시했는데, 1천명 모집에 6명이 지원하는 인력난을 보였다. 당시 버스 안내양에 대한 직업인식이 안 좋았고, 여성의 타 직종의 고용확대 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버스 안내양의 당시 급여는 월 15일 근무에 15만4천850원, 20일 근무하면 20만6천8백원으로 다른 직종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1989년 12월30일 자동차운수사업법 제33조 6항의 대통령령이 정하는 여객자동차 운송사업자는 안내원을 승무해야 한다는 조항이 삭제되면서 버스안내양 직종은 급속히 사라졌다[헤럴드DB/ 우재복 기자 jb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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